온화한 가면 뒤 소름끼치는 본성을 지닌, 두 얼굴의 '영부' 백정기(조성하)가 결국 임상미(서예지)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OCN 드라마 '구해줘'에서 한 마을을 파멸로 이끈 사이비교주를 연기한 배우 조성하를 지난 21일 만났다. 조성하는 악인 백정기와는 달리, 유쾌함과 위트가 넘치는 배우로 '영부덕후'(?)들의 심정이 이해가 갈 정도였다. 

 

 

백발이 성성한 영부님의 모습을 예상했는데, 조성하는 검은색 머리에 수염을 기른 채였다. MBC 수목드라마 '병원선' 특별출연을 위해서 염색과 다이어트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성하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며, '구해줘'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인터뷰를 이어갔다. 

'구해줘' 결말에 만족하나요.

물론 백정기가 죽는 권선징악도 좋지만, 그가 당장 단죄받는다고 해서 사이비 문제가 다 끝나는 건 아니죠. 그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결말이라면 보다 경각심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또다른 백정기가 우리에게 언제든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열린 결말이 어땠을까 싶어서 좀 아쉬웠어요. 

남다른 영부 비주얼은 본인의 아이디어라고 들었어요.

흰 머리와 흰 양복은 구원파 유병언 전 회장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예요. 그 이미지가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었는데, 마침 교주 역을 하게 된 거죠. 흰 머리를 하겠다고 하니 감독, 작가 분이 좋아하면서도 '괜찮겠느냐'고 되물었어요. 4~5번 탈색을 거쳐 색상을 얻어냈고, 일주일에 한번씩 뿌리염색을 했어요. 탈색 과정에 머리카락이 끊어지며 남아나질 않았지만 숱은 괜찮아요. 다른 건 몰라도 한 털하는 집안이거든요.(웃음) 큐빅을 박은 액세서리와 반지도 직접 제작해서 가져갔답니다. 지금껏 시도되지 않은 특별한 이야기인데 비주얼이 밋밋할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사이비 교주 역할의 연기는 어떻게 준비했나요.

사이비 교단의 영상자료를 많이 봤고, 대체로 기독교에 기반을 두고 변형됐다보니 목사님들의 화법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어요. 어릴적 잠시 교회에 갔던 기억을 더듬기도 했죠. 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교인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결국 진짜 종교인들과 백정기는 겉은 같지만 그 속이 다른 거예요. 백정기 역시 온화하고 헌신적이지만, 목적은 달랐던 거죠.

 

 

백정기는 어떤 사람일까요.

치밀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유토피아를 구상한 사람이죠. 성경책도 다 뜯어고치고… 그러려면 어설프게 하루 아침에 해서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지군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비슷해요. 백정기가 작은 '무지군'을 통해 보여져서 그렇지, 나라의 최고 수장이 그런 사람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죠. 최근 최순실 사태나 구성원 사퇴에도 얼추 비슷한 면이 있는데, 작은 곳의 이야기지만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감독, 작가와 얘기하기도 했어요. 

백정기같은 사람이 실제로 조성하에게 다가온다면 어떨까요.

저는 사기꾼을 좀 많이 만나봐서, 그걸 캐치하는 눈은 좀 있어요. 그 모습이 백정기에 조금 투영이 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실제로는 거짓말을 못 해요. 하지도 않지만, 어쩌다 하려고 해도 이미 집사람이 알아요. 뭘 사놓고 나중에 들키면 '어, 나 이거 샀는데~'(아이 목소리) 괜히 해맑은 척해요.

'구해줘' 출연 중 사이비 종교로부터 위협당한 적은 없나요.

아직까지는 없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는데, 만약 저에게 따진다면 그분이 사이비인 거잖아요. 제게 나타나봤자 손해인 거예요.(웃음)

조성하의 '인생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은데, 남다른 노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작품이 들어온 순간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대본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어요. 가족과 식사 한번 없이, 백정기 역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죠. 늘 열심히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4개월간 백정기로서 살았던 거죠.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은데요.

실생활에 쓰지 않는 표현과 대사를 혼자서 3~5분 동안 완벽히 이어가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NG나지 않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시간 투자가 많았어요. NG를 내지 않으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촬영이 끝났는데도 NG가 나는 꿈을 계속 꿨어요. 노력 덕인지 대부분 테이크 1~2번에 오케이됐어요. 

스트레스가 많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까칠하게 대하게 되지 않나요.

전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화를 못 내요. 그 분들이 절 때릴까봐.(웃음) 주먹에 대한 공포, 트라우마가 있죠. 어려서부터 저의 자랑이 있다면 온순한 거예요. 온화도 아닌 온순.

이렇게 실제 조성하와는 다른데 캐스팅 제안이 온 이유는 뭔가요.

백정기 캐스팅을 고민하고 있을 때, '화차'를 함께한 변영주 감독이 저를 추천해줬다고 해요. 변영주 감독과 동갑이라 친구거든요. 다음 영화를 금방 찍을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네요.

중견배우로서 끊임없는 에너지를 내고 있는데 비결이 있다면요. 

똑같은 걸 하는 데에 싫증을 빨리 내요. 하나의 역을 하면서도 좀 다르게 하고 싶고…. 어느 순간부턴 병으로 자리잡아서 치료가 잘 안 돼요.

'구해줘'의 백정기가 센 캐릭터다보니, 다음 작품에 대한 걱정도 드나요. 

크게 걱정은 안 해요. '황해' '황진이' '성균관 스캔들'… 지금껏 숙제 없이 출발한 작품은 없었어요. 매번 새로운 역할이고 도전이었는데, 핵폭탄처럼 펑 터지는 큰 성과는 없었지만 늘 작품과 인물을 많이 사랑해주셨어요. 저는 타고난 배우가 아니고, 늦게 데뷔한 신인이지만 매번 1mm, 2mm라고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무대가 어딘진 모르지만 계속 성장하겠다고 생각해요.

'구해줘' 시즌2를 한다면 출연할 의향이 있나요. 

저는 죽었기 때문에 못합니다.(폭소) 새로운 유전자를 조합해서, 금으로 된 팔을 하고 나온다면 모를까. 물론 시즌2에 대한 관심은 많아요. 근래 이런 작품과 캐릭터가 처음 나왔잖아요. 우리가 한 팀이 돼서 잘 만들어냈다는 것도 고무적이고요. 이런 작품이라면 고생스럽더라도 시즌2는 꼭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사진=HB엔터테인먼트, 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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