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극장가 최고 기대작 중 하나인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이 25일 언론시사를 통해 얼굴을 드러냈다. 김윤석 이병헌 박해일 고수 박희순 등 이름만 들어도 신뢰감을 주는 충무로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해 ‘명불허전’ 이름값을 톡톡히 뽐낸다.
 

영화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다.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추위와 굶주림, 군사적 열세 속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대신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실제 역사적 모습을 재현한다.

 

▸ 결사항전과 항복, 대의를 향한 엇갈린 논쟁

‘남한산성’은 전쟁을 배경으로 그리는 영화지만, 액션 스펙터클이 넘치는 영화는 아니다.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정치적 대립을 주요 축으로 서사를 끌고 간다.

영화가 두 인물의 대립쌍을 그리는 모양새는 오프닝에서부터 인상적이다. 홀로 청의 대군 앞에 선 최명길은 쏟아지는 화살비 속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임금을 쫓아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김상헌은 청의 길잡이가 될지도 모르는 나룻터 노인을 한칼에 베어버리는 비정함을 드러낸다.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전쟁을 대하는 두 인물의 엄정한 태도가 액션 못지않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선비로서, 신하로서 꼿꼿한 잣대를 가진 두 인물의 태도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으레 정치싸움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은 어느 정도 편향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방법은 다를지라도 ‘대의’를 주장하는 두 인물을 향해 관객들은 비난이나 응원을 하지 못한다. 다만 차분히 그들의 주장을 듣게 될 뿐이다.

이 기대에 발맞춰 영화는 김상헌과 최명길의 주장과 반박을 반복하며 진행된다. 더불어 이들의 논쟁은 상당히 건강하다. 당면한 사건에 대해 자신의 기개를 굽히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주장을 존중하는 모습도 보인다. 정치적 동지와 같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400년 전의 일이지만, 최근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에서도 꼭 필요한 ‘이해’라는 덕목을 갖추고 있어 더 큰 고민을 건넨다.

 

▸ 양날의 검, 느릿한 호흡 진행

꽤나 느린 듯한 ‘남한산성’의 진행은 전쟁이라는 사건 자체보다 그 가운데 벌어지는 논쟁에 대한 고민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 덕에 2시간1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은 김상헌과 최명길의 주장에 대해 더 숙고하고 공감하며, 그들이 꾸며내는 드라마에 깊은 몰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정된 사건 속에서 이토록 느릿한 호흡을 취하는 건 취향에 따라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왕의 격서를 성 밖으로 옮겨야 하는 대장장이 서날쇠(고수)의 스토리와 묵묵히 남한산성을 지키는 수어사 이시백(박희순)의 서사가 이따금씩 끼어들지만 정쟁의 밀도보단 집중도가 떨어져 약간은 사족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 스크린을 장악하는 배우들의 존재감

‘남한산성’은 액션 스펙터클이나 기승전결이 확실한 서사 구성을 취하지 않았다. 어쩌면 상업영화로서 굉장한 리스크가 큰 모험이다. 하지만 이 모험을 뚝심 있게 밀어붙일 수 있던 건 러닝타임 내내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는 배우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시너지만으로도 영화는 기대 이상의 두근거림을 전한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공간은 대소 신료들이 모여 논쟁을 펼치는 어전이다. 카메라는 좌우로 나눠 엎드린 최명길과 김상헌의 모습과 그들의 앞에 앉아 있는 인조를 또렷하게 조명한다. 형식적 독특함은 없지만, 구도자체에서부터 작품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밝힌다. 그 가운데 김윤석 이병헌 박해일, 세 배우는 자신의 위치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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