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일본 제국주의, 공산주의, 군사독재 정권이 반체제 문화예술인을 탄압했던 때 이후 이런 사례가 있을까. '범죄와의 전쟁'을 벌인 정부는 있어도 불구대천지 원수인 것 마냥 ‘연예인과의 전쟁’을 벌인 정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예술·연예계 인사 82명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한데 이어 남녀배우의 나체 합성사진 유포, 블랙리스트 대상자의 방송사 프로그램 퇴출 압력, 광고주인 기업 압박도 모자라 특정 연예인의 '프로포폴(propofol) 투약설'을 인터넷에 퍼트리는 여론 조작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방위 양상이다.

1일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와 사정 당국 등에 따르면 원세훈 전 원장 때 국정원은 '좌파 연예인 블랙리스트'에 오른 유명 연예인 A씨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심리전 계획을 수립해 상부에 보고했다.

보고서에는 심리전단 등을 동원해 A씨가 마약류로 지정된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투약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인터넷과 증권가 정보지(일명 찌라시)에 익명으로 유포한다는 계획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프로포폴 투약은 연예인에게 있어 '사망선고'와 다름 없다. 의혹 만으로도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는 사안이다. 

국정원 TF에서 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전담 수사팀은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관계자들을 소환해 해당 문건의 작성 경위를 조사하기로 했다. 실제 A씨의 이미지 실추를 위해 심리전을 전개했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2011년 12월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홍보수석실에서 '마약류 프로포폴 유통실태, 일부 연예인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는 소문 확인'이라는 문건이 만들어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수사팀은 국정원이 특정 연예인의 프로포폴 투약설을 유포하려는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의견 교환이 있었는지도 확인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국정원 조사와 검찰 수사로 국정원이 2009년부터 '좌편향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해 배우 문성근·김규리, 방송인 김미화·김제동, 가수 윤도현·신해철, 영화감독 박찬욱·봉준호, 작가 이외수 등 82명에 달하는 연예인과 문화인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퇴출 시도에 나선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심리전단은 '특수 공작' 차원에서 배우 문성근·김여진의 나체 합성사진을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설마 했던 '국가폭력' 의혹이 사실로 점점 드러나는 어이 없는 현실에 연예인을 포함한 문화예술인, 시민들의 경악과 분노는 커져만 가는 중이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KBS뉴스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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