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추석 황금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0월2일 오전, 습관처럼 잠에서 깬 나는 텅 빈 집 안을 둘러봤다. 부모님은 카톡 한 통만 남기신 채 아침 일찍 큰 집으로 떠나셨다. 쓸쓸히 시리얼을 말아먹던 나는 문득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주차장에 덩그러니 남겨진 ‘아빠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 홀로 연휴’ 프로젝트.

 

#1. 한적한 극장 is Good

자칭 ‘영화팬’ 생활을 한지 꼬박 15년 째. 그동안 잠 때문에 포기했던 ‘조조할인’을 노리고 집 근처 극장에 들어섰다. 평소와 다른 한적함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극장 안 사람들은 대부분 홀로 연휴를 즐기는 혼영족.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9시20분 ‘킹스맨: 골든 서클’을 보기 위해 십여 명의 혼영족들이 일제히 일어나는 기적을 목격하는 순간, 쓸쓸한 마음이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

 

#2. 아뿔싸, 자리를 잘못 잡았다

나 같은 소심한 혼영족들은 최대한 남들과 멀찍이 떨어져 앉는 걸 선호한다. 하지만 간혹 너무 외딴 곳을 선호하면 사진처럼 화면의 일부가 가려지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자리를 옮겨 잡으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소심한 게자리인 나에게 무려 ‘남의 자리일지도 모를’ 다른 자리로 옮기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3. 고마워요! 돌솥제육덮밥

무려 2시간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지나고, 12시가 다 돼서야 영화가 끝이 났다. 평소 친구와 즐겨 찾던 근처 한식당을 찾아 ‘최애’ 메뉴인 김치전골을 시켰다. 근데 웬걸, 아주머니 입에서 “김치전골은 2인 이상부터 가능합니다”라는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왔다. 킹갓제너럴엠퍼러충무공급 판단력을 가진 나는 삐질 흘러나오는 땀을 감추고 빠르게 돌솥제육덮밥을 주문했다.

비록 옆 테이블, 옆옆 테이블, 뒤 테이블 등등 내 자리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맛있게 보글보글 끓던 그 김치전골의 비주얼을 잊을 수 없지만, 내 혼밥을 밝게 빛내준 돌솥제육덮밥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4. 싱글도 드라이브를 할 줄 안다

오후 1시. 배도 찼겠다, 다음 혼놀 코스를 고민하기 위해 식당 옆 카페를 찾았다. 시원한 콜드브루 한 잔과 함께 잠깐 사색을 즐기고 싶었지만, 커플 고객과 가족 고객들에게 점령당한 카페는 더 이상 싱글의 영역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의 애정행각을 애써 모른 체하며 구석진 자리에 쓸쓸히 앉아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를 검색했다. 왜인지 ‘드라이브 데이트 코스’만 잔뜩 검색된다.(젠장ㅠㅠ)

 

#5. 드라이브는 역시 운전대 돌아가는 곳으로

다수의 블로거들이 추천한 ‘데이트 코스’를 피해 경인고속도로로 차를 옮겼다. 잠깐 월미도를 떠올렸지만 전 여자친구와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있는 곳이기에(잘 지내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아래뱃길 아라타워를 가보기로 결정했다.

서울 목동에서 차를 타고 약 30분 걸려서 도착한 그곳은 한적함 그 자체였다. 아라타워 내에는 가족 여행객들이 많았지만, 아라타워 반대쪽 산책로에 들어서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광합성을 즐길 수 있다. 완연한 가을이 왔다는 걸 알려주는 듯 햇살은 따스하고, 웅장하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는 왠지 고즈넉한 이곳 분위기와 꼭 어울린다.

한참을 걷다 왠지 커피 한 모금이 간절해져 인천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근처에 혼자 갈만한 카페가 있는지를 물었건만, 녀석은 대뜸 “궁상맞은 X”이라며 시비를 걸었다. 이런 낭만도 모르는 X...

 

#6. 혼자서도 디저트는 맛있다.

가을햇살의 낭만을 뒤로하고, 친구가 추천해준 카페로 차 바퀴를 옮겼다. 인천 예술회관 근처에 예쁜 비주얼을 자랑하는 D 카페를 추천해줬다. 분명 ‘근처’를 물어봤는데, 차로 40분 거리를 소개해주는 그 친구가 진정 제정신인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커피가 맛이 없다면 욕을 한 바가지해주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의외로 커피는 맛있었다. 훌륭한 친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도 커플이 많다는 것. 기왕 이곳까지 온 기름값이 아까워서라도 혼자 음료 두 잔에 케이크까지 먹었다. 옆 테이블에서 조그만 조각케이크를 둘이 나눠먹는 커플들이 되려 안쓰러워보였다. ‘디저트는 혼자 먹는 거다. 바보들아! 깔깔깔.......ㅠㅠ’

 

#7. 하루의 끝은 음악과 함께

디저트에 심취해 있다 보니 벌써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종잡을 수 없는 연휴 도로상황이 걱정돼 오후 7시께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로 결정했다. 한참을 운전을 하던 중, 하루 종일 말이라곤 밥‧커피 주문 밖에 하지 않은 통에 실컷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때마침 집 근처에 새로 코인 노래방이 오픈했다는 게 떠올랐다. 1000원에 무려 3곡!

노래방은 마치 ‘좋니’ 배틀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여기저기서 “아프다~~~”를 외치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 배틀에 동참했다. 가사대로 정말 목 아픈 노래였다. 기계는 “신이 내린 목소리”라며 칭찬했지만, 한 곡 만에 목이 쉬어버리고 말았다. 참고로 나는 원래 노래 잘한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았을 뿐이다.

 

#8. 2017년 10월2일, ‘혼놀 프로젝트’ 총평

‘쓸쓸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혼놀.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가득했다. 온전히 자신을 위해 하루를 지내본 건 생전 처음인 것 같았다. 꽤 오랜 시간 커플이 되고 싶어 발버둥 쳤던 나를 잠시 내려놓고, 당분간은 ‘혼놀’을 좀 더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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