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천우희(30)가 tvN 드라마 ‘아르곤’으로 안방극장 신고식을 마쳤다. 드라마는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방영됐지만, 인터뷰 당일에도 감기 몸살로 끙끙 앓을 정도로 천우희에겐 고생  깨나 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즐겁고 행복했다며, “첫 드라마로 아르곤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감사함을 표했다. ‘아르곤’ 팀의 계약직 기자 연화에서 배우 천우희로 회귀한 그녀를 지난달 28일,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팩트와 휴머니즘으로 빚어낸 명품 8부작 ‘아르곤’이 마지막까지 깊은 여운을 남기며 뜨거운 호평 속에 유종의 미를 거뒀다. 늦은 시간대인 11시에 방영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사랑 받았다. 8부작이라 너무 아쉽다며 시즌제를 외치는 시청자들도 등장할 정도다.

“처음에는 8부라서 ‘아, 꿀이다’ 하고 되게 좋았어요. 감독님들도 스탭들도 부담이 덜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근데 막상 8부로 종영해버리니까… 미드타운에 관한 이야기, 아르곤 팀원들의 이야기를 더 풀어나갔으면 좋았을 걸 싶기도 해요. 배우들도 스탭들도 이제 막 친해지고 편해졌는데 금방 끝나니까 아쉬운 거예요. 시즌2,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 시청률이 대박을 친 건 아니라서. 저희 부모님도 드라마가 한 시간만 일찍 했으면 보기 편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만약 시즌 2가 나온다면, 기존 드라마 멤버 그대로 갔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에 김백진(김주혁)은 기자직을 내려놓고 ‘아르곤’을 떠났지만, 말단 계약직 기자 이연화는 비로소 정규직이 됐다. 정식 기자 채용 통지서를 쳐다보며 미소 짓는 연화의 장면에 어쩐지 많은 의미가 담긴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참, 대사 없이 누워서 하늘을 보며 고지서를 받았을 때. 그 모습이 참 좋다고 느꼈어요. 누워있는데,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토닥토닥하게 되더라고요. 고생 많았다고. 기쁘기도 하고, 그동안 촬영했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어요. 그날 촬영도 거의 마지막 날이었거든요. ‘아르곤’ 촬영이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되면서 ‘아, 정말 열심히 했다’ 이런 생각을 했었죠.”

 

해고된 기자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특채로 채용된 HBC 계약직 기자 이연화. ‘용병 기자’로 불리는 연화는 잠시 주눅 들고 의기소침해 있다가도 다시 일어설 줄 아는 에너자이저다. 사회초년생의 고된 일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연화의 장면들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저도 배우로서 기자라는 역할을 맡아 연기를 했지만, 정말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더라도 무언가를 꼭 해내고 싶은 꿈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제 친구들도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드라마 속 연화를 보며 공감이 많이 간다고 하는 거예요. 저 또한 어렵지 않게 다가갔던 것 같아요. 연기를 의도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 상황에 놓여있으니까 저절로 이입이 되더라고요. 4부까지는 아르곤 팀원들이 연화를 인정해주지 않았는데, 저도 그걸 공기로부터 느꼈죠.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지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약자의 입이 되어주는 기자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연기해봤다. 연화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가려져있던 기자들의 고충을 알게 됐다.

“기자 분들이 쓴 책을 좀 읽었고, 몇 분 만나기도 했어요. 그분들이 회사에 처음 입사하시던 시절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정말 그런 생활이 가능할까’ 싶더라고요. 그걸 전부 겪어야 정식 기자가 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존경스러웠죠. 모두들 ‘아, 내 직업이 가장 고달파’라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구나 생각되더라고요. 특히 기자들은 사건을 취재하고 실체를 드러내는 과정에서의 고충뿐만 아니라, 데스크와의 갈등과 같은 다양한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드라마 속 사회초년생 연화는 어리버리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취재하는 열정 넘치는 캐릭터라 더 좋았다는 시청자 평이 많다. 

“드라마 대본 자체가 담백했어요. 보통 드라마는 여자주인공들이 ‘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네’ 식의 민폐 캐릭터로 등장할 때가 많잖아요. 하지만 ‘아르곤’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죠. 일상 속에서 정말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곳곳에서 등장해 좋았던 것 같아요. 시청자분들이 ‘짠내’ 난다고 말하는 연화도, 그 짠내 나는 상황 속에서 항상 극복하려고 하잖아요. 휘몰아치는 상황에 그저 빠져있는 게 아니라, 슬픈 일이고 힘든 일이고 다 제쳐두고 어쨌든 살아가야지, 밥부터 먹어야지 생각하는 모습들이 현실적이어서 좋았어요.”

 

처음 드라마에 도전하면서, 신세계를 맛봤다. 바로 시청자들의 발 빠른 피드백이다. 드라마 방송이 끝나자마자 포털 사이트에 영상이 업로드 되고, 곧 이어 시청자들의 댓글이 우르르 달리는 걸 보는 게 낙이었다.

“사실 첫방송은 본방송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는데도 가족도, 친구도 없이 저 혼자 봤거든요. 제가 나오는 걸 같이 보는 게 약간 민망해서(웃음). 첫 방송이라 또 떨려가지고 혼자 보는데,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톡 같은 게 있어요. 거기에 바로바로 올라오는 반응들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저도 시청자로서 ‘오, 저 부분은 재밌다’ ‘이건 또 아쉽다’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다 공감하고 계시니까… 정말 시청자분들은 속일 수가 없구나, 가장 정확하시구나 깨달았죠.”

그 중 뿌듯했던 반응이 있냐는 질문에, 천우희는 “예쁘다”는 반응을 꼽으며 해사하게 웃었다.

“‘천우희 연기 잘한다~’ 이런 반응도 좋죠. 근데 ‘예쁘다’는 반응이 제일 뿌듯하더라고요. 제가 봐도 너무 뽀얗게 나오는 거예요. 처음엔 조명 감독님이 절 안 좋아했는데, 같이 일하면서 팬심이 생기셨대요. 그래서 제 장면은 조명 넣을 때 거의 영혼을 갈아 넣으셨어요(웃음). 덕분에 너무 예쁘게 나오니까 제 지인들도 가족들도 좋아하더라고요. 옷도 계속 갈아입고 나오지, 얼굴도 예쁘게 나오지, 너무 맘에 들더라고요.”

 

최근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에 빛나는 프랑스 출신 배우 장 뒤자르댕이 SNS를 통해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천우희의 영화를 본 뒤자르댕이 ‘당신은 놀라운 여배우예요!’라며 극찬을 전한 것이다. 처음에는 사칭인가 싶어서 계정 링크를 눌러봤더니, 진짜 장 뒤자르댕의 공식 계정이었다.

“대박사건! 주변에 캡처해서 다 뿌렸죠. 그분에겐 고맙다고, 어떤 작품을 봤냐고 차분하게 물어봤지만 사실 방방 뛰고 있었어요. 저도 그분이 연출하거나 배우로 출연한 작품들을 좋게 봤던지라 신기하더라고요. 세계는 하나가 맞구나 싶기도 하고… 그 분은 ‘곡성’이랑 ‘해어화’를 봤대요. ‘곡성’은 칸도 가고 해외에도 많이 팔렸지만, ‘해어화’를 보셨다는 건 또 신기하더라고요. 제가 또 놓치지 않고 ‘한공주’라는 영화도 있는데 보지 않겠냐고 영업했죠. 앞으로도 어떤 사람이 또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니, 작품을 잘 선택하고 연기에도 힘써야겠어요.” 

지난 2004년 영화 ‘신부수업’으로 데뷔, 2011년 영화 ‘써니’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2013년 타이틀롤을 맡은 영화 ‘한공주’가 각종 영화제를 휩쓸며 배우 천우희의 입지는 보다 넓어지기 시작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주연 배우로 우대 받는 지금의 그녀에게도 목표가 존재할까.

“목표를 정해놓진 않아요. 하지만 이상향은 있어요. 그냥 정말, 대체 불가한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물론 모든 걸 잘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요. 옛날엔 뭐든지 그냥 다 잘하고 싶었는데, 그걸 못한다고 해서 괴로울 필요가 없다고 요 근래 생각되더라고요. 하나라도 잘하면 그게 어디야 싶고요. 원하는 건, 그냥 대체 불가할 정도의 훌륭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네요.”

 

사진 = 나무엑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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