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 속 예조판서 김상헌은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는 기개를 지닌 인물이다. 스크린 바깥에서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물을 보고 있자면, 새삼 김윤석(49)이란 배우의 대단함을 실감케 된다. 그의 걸음은 많은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은 ‘남한산성’에 대한 이야기에 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영화에 대한 자랑을 술술 쏟아내는 그는 아직도 김상헌 캐릭터에 폭 빠져있는 듯 했다.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굴욕의 역사인 병자호란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그가 맡은 김상헌도 물론 실존 인물이다. 게다가 정통사극을 처음으로 시도하는 터라 의욕 충만하게 인물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고 술회했다. 역사 속 기록에 자신의 상상을 더해가며 김윤석 표 김상헌을 만들어냈다.

“사실 두 인물이 말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구성이라 부담이 됐어요. 그런데 참 즐거운 부담이랄까요. 정통사극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게다가 멋진 시나리오에 멋진 배역이라 참 좋았어요. 원래 역사를 좋아해요. 그런데 역사적 기록 자체는 온전한 사실이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제 추측을 더하면서 캐릭터를 구축했지요. 항전을 주장하지만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은 캐릭터로 봤어요.”

덧붙여 김윤석은 시나리오 속 김상헌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이 보여 몰입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 제 모습과 조금은 비슷했어요. 사실 그가 싸우자고 주장하지만 막무가네 깡패 같은 인물은 아니거든요.(웃음) 승산을 따지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인물이에요. ‘우리 죽자’라는 태도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그게 굴욕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우리 힘으로’ 이겨내고자 하는 강건한 모습이에요.”

  

‘남한산성’은 김윤석을 비롯해 이병헌, 박해일, 고수, 박희순 등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일찌감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주연배우로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이 정도 캐스팅을 기대하고 참여했어요.(웃음) 원작소설부터 문학성이 정평이 난 작품이기도 하고, 정말 역사상 가장 격렬한 한 때를 조명하는 영화잖아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많이 합류할 거라고 당연히 기대하고 있었죠. 하나하나 들어오는 거 보고 ‘야... 진짜 그림 죽이겠다’ 싶었어요.(웃음) 다들 처음 같이 작품 하는 배우들인데, 이미 사석에선 술잔 기울였던 사이라 어색하진 않았죠.”

함께 출연한 동료 배우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시 숨을 고른 김윤석은 현장에서 배우들이 가졌던 마음가짐에 대해 담담히 말했다. 확고한 역사의식과 연기자의 자부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병헌씨와 논쟁을 벌이는 신에서 사실 ‘어떻게 하자’고 합을 맞추지 않았어요. 서로 맞추지 않아도 느껴지는 뜨거움을 표현하고자 했었지요. 비단 둘 뿐 아니라 현장에선 박해일, 박희순, 고수 등등 모든 배우들이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데 있어서 모두 뜨거워졌어요. ‘남한산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쳐보자는 마음. 진 전쟁이라 싫다는 마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치열한 시간을 보냈는가를 더 집중하고 싶었지요.”

 

‘남한산성’은 현재 추석 박스오피스를 질주하며 기록을 세울 만큼 큰 인기를 세우고 있다. 화끈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쾌한 개그코드도 없이, 사대부들의 논쟁만 벌어져 지루할 법 한데도 관객들은 열광하고 있다. 김윤석은 영화의 재미 포인트에 대한 자신의 색다른 관점을 밝혔다.

“‘남한산성’을 요즘으로 바꾸면, 전쟁이 벌어져서 잠실야구장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모습인 것 같아요. 도망치다보니까 대통령도 있고, 야구장 청소하는 아주머니, 건물주, 학생 등등 다 모인 거죠.(웃음) 너무 다른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벌이는 악전고투, 그게 참 재미있는 포인트인 거 같아요. 당시엔 계급차이도 있었는데, 양반이 천민에게 야단맞고 고개 숙이는 전도된 상황이 멋지게 벌어져서 재밌는 것 같아요.”

여기에 김윤석은 현재 관객들도 영화를 보고서 메시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김상헌과 최명길의 정치논쟁이 21세기 대한민국에도 통하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는 뜻이었다.

“영화 속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의 모습은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는 모습인 것 같아요. 자기가 옳다고 하는 모습이죠. 그런데 김상헌과 최명길에겐 백성을 살리겠다는 ‘대의’라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그 점은 지금 우리도 계속 생각해봐야하는 것 같아요.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를요.”

 

마지막까지 김윤석은 ‘남한산성’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매력 어필’을 부탁하자 살포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을 이었다.

“요즘엔 팩션 사극이 익숙한 때인 것 같아요. 가벼운 터치가 더해진 영화도 좋지만, 진정성 있는 영화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좋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한산성’은 셰익스피어나 그리스 비극 같은 ‘클래식’함이 녹아있는 영화예요. 재미도 물론 있고요. 김상헌과 최명길의 논쟁이... 야구로 치면 9회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느낌이지요. 하하. 꼭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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