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쟁이의 혼밥 도전기 리턴! 딱 2주만에 2편이다. 처음 시리즈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의 고로(일드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를 꿈꾸며 서울 곳곳의 1인 식당을 누벼볼 심산이었지만… 재정난이라는 심각한 현실에 직면하며, 2주에 한 번 가는 걸로 만족하려 한다. 

옷장에 3년동안 묵혀놓은 보급형 DSLR이 드디어 빛을 본 날이었다. 거창하게 DSLR까지 들고 당당히 1인 식당에 행차하는 내 모습.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도 두번째라고 창피함이 좀 덜 했다. 1편에서도 말했지만 내 최종 목표는 '패밀리 레스토랑 혼밥 체험'이다. 그만한 깡을 갖게 될 날까지 가열차게 1인 식당에 도전하겠다.

이찌멘은 신촌 현대백화점 뒤쪽에 위치해 있다. 간판은 '이찌멘'이란 글자 보단 '나가사끼 짬뽕라멘'이 훨씬 크게 보이니 숙지하고 가면 동공지진 될 일 없을 것.

가게 안에 들어선 순간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공석표지판. 무쓸모다. 비어있는 자리도 공석 표시가 안돼 있다. 그리고 그 옆엔 거대한 자판기가 서있었다. 점원이 따로 주문받는 과정 없이 손님은 이 자판기에서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할 수 있다. 식권을 발급 받으면 자리에 앉아 벨을 눌러 식권을 제출하면 된다. 점원한테 "이거 주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 조차 가끔 망설여지는 나 같은 소심쟁이에겐 아주 딱이다.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뉜 자리들 중 빈 자리가 많아 보이는 구역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거기 앉으시면 안돼요"라고 말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나처럼 혼자온 손님 여럿이 각자 휴대폰을 만지며 대기하고 있었다. 눈앞의 공석과, 등 뒤에 앉아있는 대기 손님들을 번갈아 보고 있는 내게 아까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이 설명을 했다. "거기는 커플석이에요."

아… 커플석이 많이 남아 있더라도 혼자 온 손님은 무조건 1인석에서 식사해야하는구나. 단박에 파악한 나는 무언가 비효율적인 듯 보이는 운영 행태에 의문을 품으며 대기 의자에 착석했다. 하지만 뭐…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겠지.

15분쯤 흘렀을까. 1인 구역에서 사람들이 우수수 빠져나가 드디어 1인 자리에 입성할 수 있었다. 강렬한 조명. 칸막이도 설치돼 있고 아기자기하니 좋은데, 단 하나 아쉬운 건 가방 놓을 자리가 없다는 것. 노트북이며 DSLR이며 이것저것 챙겨간 나는 소지품을 전부 더러운 바닥에 내려놓아야 했다.

벨을 눌러 식권을 제출하니 물컵을 준다. 물도 셀프! 오. 뭔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물이 나오지? 이렇게 하는 건가? 레버를 살짝 돌리는 순간 힘차게 물이 쏟아져 나왔다. 목이 말라 한 모금 마시는 동시에 재빨리 인상이 찌푸려졌다. 1인 식당은 어째 죄다 물이 미지근한가. 이 물의 출처는 어디일까? 물이 흐르는 관을 정기적으로 청소하기는 할까? 온갖 생각을 하고있는 와중 라멘이 나왔다. 

내가 시킨 라멘은 가장 베이직한 '이찌멘 세트'. 라멘에 칼슘을 추가했고, 반찬은 단무지와 김치, 공기밥과 유부초밥 중 하나씩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단무지와 유부초밥을 선택했다.  가격은 6500원. 최고가 아니면 안된다는 일념으로 한 가지 메뉴에만 집중한 라멘집이라는데 그 한 가지 메뉴를 먹어봐야 하지 않겠나. 

DSLR로 눈앞의 아름다운 광경을 찍어대니 점원 한 명이 다가와서 묻는다. "혹시 어제 전화하신 분이세요?" 아니라고 대답했다. 쿨하게 돌아간다.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후기글이 하도 많아 인기 있는 맛집이란 건 알았다만, 내가 오기 전날에도 누가 들이댔다니. 허허... 장소 선정 잘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라면은 왜 이리도 맛이 없나. 내 입맛이 이렇게나 까다로웠던가? 국물이야 뭐, 일반적인 라멘 맛이었으나 면발이 제대로 익은 것 같지가 않았다. 라면을 뒤적였다. 양배추, 숙주, 면발, 오징어, 한 개의 조그마한 칵테일 새우, 그리고 아주 약간의, 정말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로 새끼 손톱 절반 크기의 잘게 자른 고기가 다섯 개 정도 들어있었다. 해산물과 숙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입맛에 맞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었다(ㅠㅠ). 확실히 차슈(커다랗고 얇게 썬 고기)를 추가했다면 더 맛있었을 것 같았다. 아, 차슈를 추가하면 2000원이 부가된다.

더군다나 탄내가 심해서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한 개 들어있는 새우도 표면이 까맣게 타 있었고, 오징어도 마찬가지였다. 입안에 면발을 집어넣을 때마다 목구멍이 간질거리는 탓에 기침이 터져나왔다. 탄내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잘 먹겠지. 하지만 기관지가 약한 나는 결국 라멘을 클리어하지 못했다.

대기 손님이 몇몇 있길래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은 이곳이 맛있어서 오는 건가요? 속으로만 묻고 말았다. 각기 다른 개인의 입맛인 것을…☆

최종 별점

맛 ★★☆
일반적인 라멘의 맛. 혹은 그 이하. 별 두개만 주고 싶었으나 누군가는 나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음식 같아 별 반개 더 줬다.

서비스 ★★★☆
와이파이 되는 것부터 궁디팡팡감. 주문부터 음식 나오기 전까지 모든게 셀프지만 오히려 그게 고마운 부분. 짐을 놓을 공간이 없다는 게 아쉬울 뿐.

1인 특화성 ★★★★★
저번에 방문했던 1인 보쌈집과는 차원이 다르다. 칸막이는 물론, 밥 먹을 땐 테이블 앞을 천막으로 막아주기까지. 점원과의 대화 없이도 모든걸 처리할 수 있는 철저한 개인성. 음악도 크게 틀어줘서 어색한 적막감이 깔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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