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 드디어 가슴 벅찬 종영을 맞이했다. 김주혁은 tvN 드라마 '아르곤'에서 예능 ‘1박2일’의 ‘구탱이 형’과 상반되는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진짜 뉴스를 전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방송사 탐사보도팀 아르곤의 수장 김백진 역으로 마지막까지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드라마를 마친 그를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종영 소감 질문에 “시원섭섭해도 잠 좀 잘 수 있어서 좋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명품 8부작 ‘아르곤’에서 HBC 방송국 간판 앵커이자 탐사보도팀장인 앵커 김백진(김주혁)은 기자직을 내려놓고 ‘아르곤’을 떠났다. 정직한 보도를 추구하는 팩트 제일주의자의 마지막에 아쉬움이 남을 법도 한데, 그런 인간 김백진의 모습은 어쩐지 만족스러웠다.

“충분히 만족했다. 끝나면 느끼게 되는 여운이 있어서 더 좋았다. 8부작임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길게 남더라. 너무 뻔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큰 의미 부여 없이 그냥 담담하게 탐사보도팀을 나간 것 같았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나간 건 아니지 않나. 오히려 그가 영웅처럼 그려졌다면 그게 더 싫었을 것 같다. 어디서든 팩트를 전하는, 내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결말에 잘 나타난 것 같다.”

김백진은 기자 생활에서 버릇된 캐묻는 듯한 말투, 지식을 과시하고 무지를 조롱하는 태도 때문에 재수 없다는 평을 달고 사는 인물이다. 극 초반 사회초년생이자 계약직 기자 이연화(천우희)를 대하는 살벌한 태도는 시청자들의 분노를 야기하기도 했다. 공적으로는 완벽해 보여도, 가정만큼은 엉망진창인 다분히 복합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아르곤’은 어떤 캐릭터가 유독 도드라져야 할 드라마가 아니었다. 김백진 역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한 사람일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연습해야 할 부분은 앵커 역할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앵커로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밀고 나가는 소신, 팀원들이 잘못하고 있으면 아니라고 정확히 짚어주는 냉철함을 연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팀원들을 향한 애정이 깊고, 성격상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인물로 설정했다.

 

 

드라마 속 김백진은 JTBC에 취임한 이래 방송가에서 가장 커다란 화제를 이끌고 있는 손석희 앵커를 떠올리게 한다. 딱히 손석희 앵커를 염두하고 연기한 건 아니었다. 다른 롤모델을 삼지도 않았다.

“손석희 앵커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더 부담스러웠다. 앵커 역할을 하기 전에 고민이 많았는데, 물론 이 뉴스, 저 뉴스 전부 보고 따라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얻게 된 결론은 그냥 내 멋대로 하자는 거였다. 따라해서 될 일이 아닌 거다. 그래야 나만의 스타일이 나오는 거니까. 결국 드라마가 김백진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도 앵커란 사람 역시 완벽하지 않다는 게 아니었나.”

난생 처음 맡아보는 앵커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감정 컨트롤이었다. 공정한 보도를 위해 중립을 지켜야하는 앵커의 위치를 이해하지만, 직업이 배우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잇따르는 고충이었다.

“연기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말을 하면 감정이 실릴 수밖에 없다. 욱하거나 분노하는 부분이 많은 와중 대사에서 감정을 빼내는 것 자체가 어렵더라. 그런 고민이 이번 드라마를 찍으면서 생겨난 것 같다. 대신 앵커가 화면에서 벗어나는 순간, 무대 뒤편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연기하는 게 재밌었다. 연화가 뭘 못하면 발로 푹 찌르고, 그런 사사로운 재미 같은 것들. 그런 장면은 감독님에게 직접 제안하면서 함께 만들어나갔다.”

 

 

백진과 부하 직원 연화의 관계 변화도 눈여겨보게 되는 흐름이었다. 백진은 초반에 연화를 무시하고 투명인간 취급했지만, 김주혁은 연화 역의 천우희가 처음부터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잘하는 사람은 무조건 좋다. 잘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눈을 들여다본다. 이야기를 안 듣고 자기 연기만 하는 애들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소용없더라. 그래서 난 항상 들으라고 한다. 누가 얘기하든, 사람의 말을 집중해서 들으면 연기는 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다고. 천우희와는 말도 필요 없었다. 한 장면을 하더라도 원활하게 연기를 주고받는 게 바로 케미스트리다. 사실 우희는 처음 만나 인사하는 순간부터 딱 알 수 있었다. 연기를 해보기도 전이었지만, 이 사람이 어떤 마인드를 갖고 연기에 임하는지 촉이 오더라.”

탐사보도 아르곤의 팀장이자 팀원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는 김백진처럼, 평소 스스로 후배들에게 좋은 멘토일 것 같냐는 질문에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혹은 그런 선배가 있었냐는 질문에도 대답은 NO다.

“인간관계가 넓지 않아서… 지금까지 그런 분은 사실 없었던 것 같다. 나로서는 솔선수범해서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다. 부모님 잔소리하듯 하는 게 아니라,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애들이 잘 자라게 될 거라고 믿는다. 후배들이 과연 날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다.”

 

 

1998년 데뷔 이후 딱히 논란 없는 배우로 롱런하고 있다. 연기력은 물론 사생활 역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넌지시 말하니 “관리는 참 애매한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배우가 관리를 해야 되기도 하지만, 그게 큰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철이 들어야 하면서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자유로울 필요는 있다. 그래야 더 좋은 연기가 나오니까. 우리나라 배우들은 연기로 다 푸는 것 같다. 쌓인 거 풀고 싶으면 연기로 에너지를 쏟아내는 거다. 나도 ‘아르곤’이랑 영화 ‘독전’ 찍으면서 많이 쏟아냈다. 특히 ‘독전’은 욕설 연기가 많았다.”

늦은 시간대인 11시에 방영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사랑 받았다. 8부작이라 너무 아쉽다며 시즌제를 외치는 시청자들도 등장할 정도다.

“8부작도 힘든 건 똑같다. 드라마가 별 다른 건 없었고, 팀 분위기가 좋았다. 스태프들도 영화 쪽에서 넘어와서 다 알고 있던 사람들이라 편했고. 감독님 스타일도 내가 추구하는 것과 잘 맞았다. 글이 워낙 좋기도 했지만, 8부작이어서 선뜻 하겠다고 한 거다. 16부작이었으면 정말 고민했을 거다. 8부작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그 두 배라고 생각하면, 어휴…(웃음). 시즌2는 일단 글을 먼저 볼 것 같다. 글이 너무 좋아도 12부라고 하면… 그건 좀 생각해보겠다(웃음).”

 

사진 = 나무엑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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