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상(35)은 무대 위아래의 모습이 사뭇 다른 배우 중 하나다. 현재 공연중인 뮤지컬 '나폴레옹'에선 결연한 얼굴로 온 힘을 쏟아 연기하면서도, 인터뷰에선 '끼부리는 지상이'가 되어 유쾌한 멘트를 툭툭 던진다. 

 

 

지난 7월 개막한 '나폴레옹'은 프랑스 영웅 나폴레옹의 성공과 사랑, 쓸쓸한 말로까지 그려낸 작품이다.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여지없이 한지상의 '인생 캐릭터'로 꼽을만하다. 그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물론 감정연기가 객석을 압도한다. 비결은 역시나 남다른 연구와 노력이다.

"물론 매번 최선을 다하지만, '나폴레옹'의 경우 제가 해야 할 것 이상의 많은 것을 쏟아부은 작품이에요. 집착했고, 징그러울 만큼 제 영혼을 많이 바쳤죠.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서, 1막이 끝나고선 거의 샤워한 듯 땀에 범벅이 돼요. 격렬한 안무, 움직임도 없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 굉장히 많은 것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자신과 정신력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폴레옹처럼 저 역시도 오기와 욕심이 있거든요."

'나폴레옹'은 아시아 초연된 공연으로, 기본 넘버들은 그대로지만 수십 개의 장면들 사이를 메우는 것은 새로운 과제였다. 한지상은 새 장면을 넣거나, 대사 순서를 뒤바꾸며 나폴레옹이 관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유배된 나폴레옹이 이전에 함께했던 병사들과 맞서게 되자, 과거 알프스에서 불렀던 노래를 불렀던 것은 그의 아이디어다. 이로써 자연스레 병사들이 총구를 내리게 만들었다. 

절절한 멜로도 '나폴레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나폴레옹은 연인 조세핀과 불꽃같은 사랑을 나눈다. 

"어떤 존재를 지독히 사랑하면, 미워하게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승전결이 보다 쉽게 풀리더군요. 그렇게 절절하게 놀고 나면 마치 꿈에서 깬 것 같기도 해요. 옷을 갈아입으며 정리하면 허무할 만큼, 간극이 세죠."

한지상은 '나폴레옹'이 현 한국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대한 분석도 내놨다.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프랑스 역사는 격변한다. 

"한 혁명가가 나서서 설득하고, 국민들도 그에게 의지하죠. 그와 국민들이 꿈꾸는 세상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프랑스 역사지만 한국 관객이 상당부 공감할 수 있다고 봐요."

 

 

'나폴레옹'에서 멜로를 살짝 선보였다면, 12월 5일 개막하는 '모래시계'에선 제대로 사랑에 빠질 예정이다. 히트 드라마를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한지상은 원작에선 최민수가 맡았던 태수 역을 연기한다. 원작에선 최민수의 남성미가 빛난 역이었는데, 한지상표 '모래시계'는 어떨까.

"원작의 최민수 선배님이 최고의 답안을 내신 것이기 때문에, 그 분처럼 접근해선 절대 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뮤지컬로는 드라마 24부작을 3시간여로 압축하고, 음악을 추가하고, 무대에서 공연하니 또다른 답을 요구하는 거죠. 제겐 아주 좋은 핑계인 거죠.(웃음) 태수에게서 본인만의 자유를 꿈꾼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저만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표현할 생각이에요."

올 초 '데스노트'부터 '나폴레옹'과 '모래시계'까지. 전혀 다른 장르와 내용같지만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세 작품의 주인공 모두 다양한 갈등을 겪는데, 그 점이 한지상의 취향을 저격했다.  

"'나는 누구이고, 왜 태어났으며,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같은 내적 갈등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것을 표현하는 작품이라면 계속해 도전하고 싶어요. 나폴레옹이 그랬듯 태수 역시 정세적 난국과 사랑 등, 다양한 갈등을 겪죠. 세 작품의 선택엔 제 무의식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공연하며 제 자신에 대해 좀더 발견하게 돼요."

 

 

알찬 한 해를 보내고 있는 한지상은 최근 새 소속사(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하기도 했다. 한지상과의 인터뷰에선 소속사의 이름이 대여섯 번 언급됐다. 그만큼 새 파트너와 함께하는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제가 먼저 새 회사에 연락을 드렸어요. 대시를 했던 거죠. 사랑하는 상대에게 고백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던 건데 감사하게도 연이 닿았어요. 지난 5년간 전 소속사와도 서로 윈윈하며 잘 달려온 것 같은데, 지금 이 시점에 배우 한지상의 행보에 있어서 또다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데스노트'를 함께한 (강)홍석, (박)혜나, (정)선아의 회사여서 보면서 영향을 받았죠. 그게 아니었다면 다른 회사들을 조사해야 했을텐데, 동료들 덕분에 운 좋게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된 거죠. 전 제 선택을 믿고, 기분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결혼 적령기인데…"라고 말을 꺼낸 취재진에게 "적령기예요, 저?"라고 해맑게 되물은 한지상은 앞으로도 '열일' 행보를 이어갈 듯 보인다. 그는 "배우는 비정규직이라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오로지 본인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행보는 제가 저를 얼마나 더 발전시키고 준비하느냐에 달렸어요. 세상은 준비된 사람을 원하니, 제가 열심히 해야 절 발견하고 쓰실 거예요."

한지상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답변은 배우로서 관객을 대하는 자세였다. 이런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에 관객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비싼 티켓 값과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셔서 오신 건데, 준비 과정이 힘들었다느니 하는 저희의 속사정은 필요 없죠. 관객 분들이 어떻게 느끼냐가 중요해요."

 

 

사진=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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