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케이블 채널 OCN 드라마 ‘처용’ 제작 때 배우 문성근과 임찬익 PD가 갑작스레 하차한 것이 박근혜 정권의 압박에 굴복한 제작사 CJ 측의 결정이었다고 16일 경향신문이 단독 보도했다.

 

 

그동안 CJ그룹 계열사인 CJ E&M은 감독과 배우 교체에 대해 “제작비 부담과 드라마 구성상 문제 때문”이라는 해명을 해왔으나 검찰 수사와 이재현 회장 구속 등 그룹 위기 속에 정권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배우와 PD를 퇴출시킨 게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1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실 등에 따르면 임 PD는 이미 ‘처용’ 1~5회분 촬영과 편집을 마친 2013년 11월쯤 CJ E&M 담당 팀장으로부터 문성근 하차와 편집본에서 출연분 전체 삭제를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 PD는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문성근씨 역할이 극중 매우 중요해 절대 안된다고 했더니 며칠 후 나에게 그만두라고 해 쫓겨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는 당초 그해 11월 방영이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PD·배우 교체와 재촬영, 재편집 등의 이유로 이듬해 2월에야 첫 방영됐다. 1~5회 재편집본에서 문성근은 완전히 사라졌다. 임 PD는 총 10회분 중 7회분을 제작하기로 계약했지만, 4회 분량만 촬영한 뒤 해고당했다.

CJ E&M 관계자는 “오너(이재현 회장)가 구속된 상황에서 보수인사들과 보수언론들이 CJ를 ‘종북좌파 소굴’이라며 압박했다”면서 “사기업이 이런 상황에서 정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 회사 차원에서 이들의 퇴출을 결정한 게 사실”이라고 밝혔으나 그룹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은 부인했다. 하지만 또 다른 CJ E&M 관계자는 “CJ그룹에서 직접 문씨 하차를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CJ는 2012년 케이블채널 tvN ‘SNL 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를 풍자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영화 ‘광해’(2012) 개봉, 노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영화 ‘변호인’(2013) 투자 등으로 박근혜 정부에 ‘좌파성향’으로 낙인찍힌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5월에는 검찰이 조세포탈·횡령·배임 등 혐의로 CJ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고 이 회장은 같은 해 7월 구속됐다. 이미경 부회장 역시 청와대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았다. 문성근과 임PD의 퇴출은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뤄졌다.

이후 CJ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기업 홍보 광고에서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었던 ‘창조경제’를 인용해 “CJ는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라고 노골적인 구애를 펼쳤다. ‘명량’(2014), ‘국제시장’(2014), ‘인천상륙작전’(2016) 등 애국심을 강조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잇따라 내놨다. 사법부로부터 2년6개월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받았던 이 회장은 CJ의 눈물 겨운 노력 끝에 2016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문화로 미래를 창조하고 싶었습니다”라던 CJ의 의지, “문화는 CJ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요”라던 자부심의 진정성에 의문이 들게 된다. 외압에도 소신과 원칙을 지켰던 이들이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를 이어왔고, 현재와 미래를 창조했다. 한 사회의 문화를 메이킹 하겠다고 나선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꺼삐딴 리’와 같은 행태를 보인 CJ를 두고 폭압적 정권의 피해자라고 여기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 전에 적극적인 부역에 대해 사과하는 게 우선순위 아닐까.

문화의 정신을 이해조차 못했던 정권 2대와 이들의 천박한 이데올로기를 집행한 국정원, 대기업에 의해 ‘밥줄’이 잘렸던 배우 문성근은 토로했다. “CJ는 이후 투자 행위 등을 봤을 때 회사 차원에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게 분명해 보인다”고.

사진출처= CJ 기업홍보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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