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영국의 주목받는 젊은 미술작가가 내뱉는 심상치 않은 호흡이 관람객과 '직면'한다.

박미례와 나일 크레이븐의 2인전 ‘외면할 수 없는(Confrontation)’(10월20~29일·성북동 17717 갤러리)은 평온하고 당연해 보이던 모습 안에 도사린 냉랭함,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지 못한 대상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를 선보인다. 두 작가는 오브제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찾고 더욱 뛰어난 묘사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외면할 수 없었던’ 대상이 작품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보여준다.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캔버스에 유채 487cm x 237cm (3pcs) 2016

 

작품에서 동식물들의 부조리한 존재와 처한 상황을 그려온 박미례 작가는 출품작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에서 색의 아름다움, 처연해 보이는 동물의 모습과 과감한 붓 터치로 대상에 대한 감정 몰입을 극대화한다. 그들이 겪는 생사를 가르는 난관과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훅 느껴진다. ‘곰들’ ‘야경꾼’ ‘소’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작가가 일상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풀어낸다. 특히 시인 김기태의 시 낭독을 듣고 그리게 된 ‘소’는 나를 소처럼 느끼게도 하고, 답답한 현실이 시에서 서술하는 소의 모습인 듯한 잔상을 남긴다.

 

(야경꾼) 종이위에 목탄, 콩테 , 연필 133x100cm 2017 , (곰돌) 종이위에 목탄 ,콩테 ,연필 90x131cm 2017 , (소) 종이위에 목탄 , 콩테 , 연필 80x102cm 2017 (왼쪽부터)

 

박 작가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선과 색의 강렬함, 내재한 서정성은 쉽게 뇌리에서 잊히질 않는다. 이는 대상을 외면할 수 없는, 그래서 결국 그리게 되는 작가의 마음을 오롯이 느껴지도록 한다.

의학서적이나 자료에서 다루는 인간의 몸은 의료행위를 위해 ‘객관성’을 요구받는다. 물리적 수치와 형태, 과학적 용어로 서술되는 몸은 하나의 사례로서 존재할 뿐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 인정되질 않는다. 현대미술을 현대의학과 동일시하면서 본능적인 감각과 임상 사이에서 긴장감을 유지해온 나일 크레이븐은 이성적인 신체와 감성적인 신체성에 대한 의미를 탐구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작인 토르소, 선과 색과 기호로 이뤄진 드로잉 작품은 신체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기존의 매력적인 색깔은 유지하면서 선과 붓의 사용에서 변화를 드러낸다.

 

UnKnown figure in space 28x21cm 종이에 과슈 2017

 

검은 선으로만 그린 작품에서는 면으로 구성된 화면과 상반된 선의 강점이 나타난다. 최근작은 드로잉보다 회화에 가깝다. 닫히지 않고 선으로 표현된 신체는 배경 위에 얕게 나타난다. 대상에 대한 감정적 표현으로 여겨지던 기호는 그리드처럼 배경이 돼 신체 외 영역 전반에 자리 잡기도 한다. ‘Figure Lying on a Bed’와 ‘Figure on Stool’은 각각 누운 자세의 한쪽 발과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을 그리고 있다. 관람객이 볼 수 있는 것은 발과 손이지만, 어떤 상황에서의 신체인지는 모른다. 작품을 말해주는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배경이다.

구상과 추상, 역동과 고요가 공존하는 유화,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묘사력의 목탄과 콩테 그림으로 유명한 박 작가의 작품들은 일상 중에 불현듯 포착되는 대상이 작품으로 이어지며 점차 깊이를 더해간다. 나일 크레이븐 작가의 경우 드로잉에서 회화로 이행하면서 일어나는 색과 선, 면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박미례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전문사 학위를 취득했다. ‘기묘한 땅’(2011), ‘종의 우제류’(2012), ‘박제짐승’(2012), ‘천국과 지옥 사이’(2014), ‘접시꽃’(2014) 등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동하는 자연,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는 세상사를 거대한 화면에 휘몰아치듯 묘사해오고 있다.

나일 크레이븐은 영국 헐스쿨 예술 및 디자인과에 이어 뉴캐슬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다수의 개인전,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6년 한국에 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올해 3월 개인전 ‘Pins & Needles’를 개최했다.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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