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기근에 시달렸던 충무로에 새로운 얼굴이 떴다. 배우 이학주(28)는 지난 19일 개봉한 ‘가을 우체국’(감독 임왕태)에서 장편영화 첫 주연을 맡아 배우 권보아와 풋풋하면서도 가슴 시린 로맨스 케미스트리를 완성했다. 개구진 소년 같은 이미지는 물론, 진지한 멜로 무드까지 다채로운 인상을 간직해 극장가에 신선한 바람을 전한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밝게 빛나던 날, 첫 주연의 설렘을 간직한 배우 이학주를 마주했다. “영화 잘 봤다”는 첫 인사에 “정말요?! 감사합니다”라며 밝게 웃는 모습에서 참 진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 ‘가을 우체국’은 20대의 마지막에 꿈같은 미래를 준비하던 수련(보아)이 인생의 끝에 서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운데, 자신을 향해 “결혼하자”며 돌직구를 날리는 13촌 조카 준(이학주)의 진실한 감정을 느끼면서 조용히 삶을 정리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최근 한국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로맨스 감성을 간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실 로맨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요.(웃음) 요즘에는 많이 만들어지는 추세가 아니라서 참 아쉬워요. 그런데도 ‘가을 우체국’을 찍게 된 건 어찌 보면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죠. 20대 남자라면 해보고 싶은 장르잖아요. 드문 기회를 잡은 거지요. 또 평소에 해보지 못하는 사랑을 느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학주는 “보아 선배와 연기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을 빼놓지 않고 덧붙였다. 20대 후반의 남자들에게 보아가 독보적인 아이돌이었다는 걸 생각해 봤을 때 꽤나 당연한 반응이었다.

“로맨스에서 감정몰입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보아 선배가 너무 예쁘셔서 너무 쉽게 몰입이 됐죠.(웃음) 물론 사랑이라는 게 예쁘다는 것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서 고민을 많이 하긴 했어요. 그럴 때마다 선배님이 참 편하게 제 의견을 들어주셨어요. 아무래도 활동 연차가 너무 차이가 나서 위축되는 느낌이 없진 않았는데, 현장에서 굉장히 잘 챙겨주시면서 제 마음이 사르르 풀렸어요.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어요.”

 

‘가을 우체국’에서 이학주가 맡은 준 역은 일반적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직구를 날리는 모습은 물론, 마땅한 직업은 없지만 늘 무언가 성실히 일을 하고 있다는 점도 캐릭터에 대한 의문을 키운다. 현실 속 20대 청년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를 맡아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질문을 던졌다.

“남들이 봤을 때 좀 한량 같지요.(웃음) 그런데 목적의식을 가지고 나름 성실하게 사는 인물이에요. ‘사랑하는 여자와 세계여행을 떠나겠다’는 목표만 바라보면서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5000만원을 모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우직한 녀석이지요. 어찌 보면 굉장히 부럽기도 해요. 인생의 목표를 일찍 잡고서 흔들리지 않고 돌진한다는 게 진짜 청춘의 모습이 아닐까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준이처럼 사랑이든 일이든 감정가는 대로 솔직하게 행동하려고 했어요. 용감했죠. 그러다보니 때론 상처 받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머뭇거리게 되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제 우선순위가 감정보다 현실 쪽으로 더 쏠린 것 같아요. 그런데 ‘가을 우체국’을 하면서 제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됐어요. 조금 더 목표를 향해서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강해졌어요.”

 

빠른 89년생인 이학주는 지금 서른 즈음에 서있다. 누구나 이 시기엔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최근 그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어진 그의 말에선 신인배우가 할 법한 깊은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문득 연기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럴까 돌이켜보니까 대본을 받으면 제가 사랑할 수 있는 캐릭터와 그렇지 못한 캐릭터가 있는데, 예전에는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꽤 무신경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연기 스킬을 떠나서 캐릭터 자체에 애정 없이 연기를 했죠. 그래서 요즘에는 어떤 캐릭터든 품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웃음) 다양한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제 욕구가 드러난 목표 같기도 하네요. 하하.”

이학주는 아직 많은 대중에게 익숙한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꽤 많은 작품에 참여하며 다양한 얼굴을 연기하며 실력을 쌓아왔다. 단편영화 ‘12번째 보조사제’부터 영화 ‘날, 보러와요’,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38사 기동대’ 그리고 이번 ‘가을 우체국’까지 인상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성공하려면 청사진을 잘 그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청사진보단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마인드예요.(웃음) 목표를 크게 잡으면 괜히 붕~뜨는 것 같더라고요. 게임으로 치면 스테이지 1에 있는데 끝판왕 생각하는 느낌이랄까요. 내 커리어를 위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도 주어진 일에 하나하나 집중해서 스테이지를 깨나갈 생각이에요."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이학주는 “운이 좋았다”라고 자평했다. 아직 친구들과 노는 게 너무 좋은 나이. 하지만 마냥 노는 것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만큼 늘 열심을 다지고 있다고 밝혔다.

“저는 사실 되게 불안정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늘 편한 곳으로 도피하고 싶어 해요. 또 배우라는 직업이 일이 없을 때는 오래 쉬잖아요. 불안하니까 계속 친구들을 불러서 놀아요.(웃음) 그런데 이제는 마냥 놀기엔 제게 주어졌던 ‘운’들에게 참 미안한 것 같더라고요. 운이 좋게 드라마도 하게 되고, 영화도 하게 됐잖아요. 운이 제게 와준만큼 저도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스스로를 갈고 닦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진 권대홍(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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