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형사가 보이지 않는 소년을 범인이라 확신하고 취조한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도 무대 위에 소년을 그려내 사건의 내막을 알고 싶어진다. 하지만 극이 끝나면 '얼음'처럼 단단히 존재했던 소년은 어느새 녹아 없어져있다. 연극 '얼음'이 관객에게 상상하는 즐거움을 선물하는 방식이다.

'얼음'은 잔인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열여덟살 소년과 그 소년을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두 형사의 이야기다. 지난 2016년 초연됐던 화제작이다. 

무대 위에는 형사 역을 맡은 두 명의 배우가 등장하지만 극을 만드는건 세 명의 인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년은 두 배우의 대사와 몸짓, 관객들의 상상력으로 완성된다. 관객 입장에선 소년이 어떻게 생겼을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태도와 말투를 표현하는지 창조해내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취조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두 인물의 대사만으로 진행되니 무엇보다 '말의 맛'이 핵심이다. 장진 연출 특유의 유머감각이 빛을 발한다. 진지한 상황 속 다소 엉뚱한 말, 그러면서도 공감 가득한 대사로 웃음을 이끌어낸다.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는 만큼 몰입도도 탁월하다. 끝없는 추리와 심리싸움, 허를 찌르는 반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무대 연출도 돋보인다. 막이 바뀔 때마다 무대 위 소품 배치가 달라진다. 관객은 같은 공간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된다. 시선의 변화는 곧 이야기와도 맞닿는다. 초반 두 형사의 말에 설득 당하면서 소년을 범인이라 단정짓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그 믿음은 흔들리게 된다. 소년도 사건의 진실도 모두 허상일까. 틀에 따라 모양이 굳어지는 얼음처럼 무형의 진실 역시 시각에 따라 완성되는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걸 하나로 녹여내는 건 단연 무대 위 두 배우의 힘이다. 두 형사가 극과 극 성향을 지녔다는 점도 흥미롭다. 형사1 역의 이철민은 중후한 목소리 만큼이나 무게감을 과시한다. 차분하고 신사적이지만 속엔 불같은 뜨거움을 가진 인물을 표현해낸다. 근엄한 외모로 던지는 유머도 장진 연출의 코드와 찰떡이다. 

형사2 역 신성민은 불같은 다혈질 성격이다. 욕을 습관처럼 내뱉지만 불편하기보단 친근하다. 폭발하는 감정과 대비되는 귀여운 노래와 율동도 관전포인트다.

한편 '얼음'은 오는 3월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한다. 형사1 역은 이철민, 정웅인, 박호산, 형사2 역은 김선호, 이창용, 신성민이 번갈아 연기한다.

사진=장차, 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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