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와 신구. 한국을 대표하는 두 배우가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에 꾸준히 함께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작은 무대 위에서 전하는 웃음과 감동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앙리할아버지와 나'는 까칠한 성격의 앙리할아버지와 꿈을 찾아 방황하는 대학생 콘스탄스가 서로의 인생에서 특별한 존재가 돼가는 과정을 그린 연극이다. 프랑스 극작가 이방 칼베락의 작품이 원작이다. 국내에서는 2017년 초연, 2019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다.

콘스탄스는 우여곡절끝에 앙리할아버지 집에 함께 살게된다. 여전히 아내를 잃은 슬픔을 간직한 앙리는 아들 폴과 며느리 발레리가 못마땅하다. 그리고 콘스탄스에게 제안한다. '아들을 유혹해 둘을 갈라놔'

다소 막장드라마 향기를 풍기는 이야기에서 콘스탄스와 폴, 발레리의 관계가 코믹함을 유발한다. 폴을 유혹하려는 콘스탄스, 이에 따른 폴의 반응과 발레리의 독특한 캐릭터가 어우러지며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합 역시 시너지를 높인다. 콘스탄스 역에 두 번째로 참여한 권유리는 '소녀시대 유리'를 떠올릴 것 없이 온전히 배우로서 능력을 뽐낸다. 재기발랄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찰떡이다. 

폴 역의 조달환은 소심한 샌님과 느끼한 불륜남을 오가며 무대를 종횡무진 누빈다. 발레리 역 유담연도 미워할 수 없는 수다쟁이 캐릭터로 톡톡튀는 매력을 선보인다.

반면 앙리할아버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뭉클함을 안긴다. 인자하고 푸근한 인상의 배우 신구의 관록이 돋보인다. 앙리는 까칠하게 굴면서도 아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정많은 아버지다. 타지에서 홀로 분투하는 콘스탄스에게는 꼬장꼬장하면서도 친할아버지처럼 따스하게 품어준다. '감기 걸리지 마'라는 그의 마지막 말에는 눈물이 핑 돈다. 

담고있는 메시지가 참 많은 작품이다. '나의 가족' '나의 아들' '나의 아버지'이지만 결국 그들도 타인이다. 가족이라도 온전히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법. 그저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까 고민하는 콘스탄스에게 전하는 앙리의 잔소리도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겁먹고 도전을 주저하는 젊은이에게 전하는 '말뚝에 묶인 코끼리 이야기', 또한 인생의 성공을 바라는 이에게 전하는 말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면 그 기준은 사랑하는데 얼마나 성공했느냐다'. 여러모로 삶과 관계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안겨주는 작품인 듯 하다.

한편 이번 공연은 오는 2월14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진행된다. 앙리 역 신구, 이순재, 콘스탄스 역 권유리, 박소담, 채수빈, 폴 역 조달환, 이도엽, 김대령, 발레리 역 김은희, 유담연, 강지연이 출연한다.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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