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서 일본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감독 츠키카와 쇼‧이하 ‘너의 췌장’)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개봉한지 나흘 만에 14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천만 관객’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수치는 어쩌면 적어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오스톰’ ‘대장 김창수’ 등 대작을 꺾고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는 건 일본영화팬의 입장에선 꽤 고무적으로 보입니다.
 

‣ 일본영화는 왜 우리 곁을 떠났나?

사실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일본영화는 꽤 오랫동안 한국관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98년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 개방된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일본영화도 많은 사랑을 받던 시기가 있었지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러브레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 로맨스영화부터 ‘링’ ‘주온’ ‘검은 물 밑에서’ 등 공포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며 국내에도 일본영화 마니아들이 양산된 바 있습니다. 물론 에디터도 그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일본영화는 국내 관객들에게 멀어지고 말았지요.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2000년대부터 멀티플렉스 극장이 널리 퍼지면서 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오락매체로서의 가치가 더 중요해지면서 한국에서도 대형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들이 속속 등장, 압도적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극장가 트렌드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스펙터클에 빠뜨릴 수 있을까”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캐릭터들간의 관계와 감정을 잔잔한 문법으로 그려내는 일본영화는 관객들의 취향에서 멀어진 것이지요.

 

‣ ‘스펙터클’에 염증, 감성영화 수요 증가

그러나 2000년대부터 2017년까지 10년 넘게 지속된 ‘스펙터클의 시대’에 대해 조금씩 염증을 느끼는 관객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반영된 두 가지 흐름이 눈에 띄는데요, 바로 재개봉 열풍과 올 초 ‘너의 이름은.’(감독 신카이 마코토)부터 ‘너의 췌장’에 이르는 일본영화 개봉러시입니다. 이 두 흐름은 10여 년간의 스펙터클과는 거리를 둔 ‘감성영화’라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2015년 이후 재개봉 영화를 살펴보면 ‘이터널 선샤인’(32만5861명), ‘노트북’(18만1031명), ‘500일의 썸머’(14만7891명), ‘인생은 아름다워’(12만7325명) 등 감성을 자극하는 로맨스, 드라마 장르가 큰 인기를 끌었음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사양장르(?)라고 여겨졌던 로맨스에 대한 관객들의 수요가 꾸준히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더불어 올 초 개봉해 367만3876명의 관객을 모은 ‘너의 이름은.’의 활약은 그에 확신을 심었는데요.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관객들의 수요도 합쳐진 결과지만, 지브리 스튜디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판타지 애니메이션과 다소 다른 궤의 감성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다시 한 번 ‘일본풍 감성’에 대한 관객들의 거부감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 일본 감성영화의 정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결국 ‘너의 췌장’의 인기는 이처럼 최근 변화된 관객들의 취향이 동력으로 분석됩니다. 물론 여기에 더해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너의 췌장’은 일본 감성영화의 미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근래 대부분의 로맨스영화가 주연에 극히 집중하면서 나머지 캐릭터를 단순히 주인공들의 사랑을 부각시켜주기 위한 소모품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았다면, ‘너의 췌장’은 캐릭터 하나하나에 시선을 둡니다. 나(키타무라 타쿠미)와 사쿠라(하마베 미나미)의 애정 뿐 아니라 절친을 빼앗긴 쿄코(오오토모 카렌)의 감정을 소묘하고, 우직한 친구(야모토 유마)의 존재감도 감추지 않습니다. 그 덕에 다양한 인물의 보편적 첫사랑 감성을 생생히 그려내는 힘이 생긴 것이지요.

또한 과거의 풋풋한 첫사랑에만 힘을 싣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현재의 나(오구리 슌)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균일하게 강조하는 건 ‘러브레터’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 명작 일본로맨스에서 확인할 수 있던 그들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지질한 일상을 사는 어른관객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로맨스의 미덕이 관객들에게 큰 어필을 건네고 있습니다.

 

물론, ‘너의 췌장’의 인기만을 두고 또 한 번 ‘감성영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확언할 수 없습니다.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한 ‘토르: 라그나로크’ ‘범죄도시’ 등 스펙터클한 영화들의 힘은 아직도 무시무시하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스펙터클 일색이던 극장가에 ‘너의 췌장’의 존재감은 왠지 흐뭇합니다. 아마 제가 로맨스영화 ‘빠돌이’이기에 앞으로 더 다양한 제 취향의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때문이겠지요. 이 바람을 타고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같은 한국 로맨스의 부흥도 덩달아 기대해 봅니다.

 

사진='러브레터' '철도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검은 물밑에서' '주온' 포스터, '너의 이름은.' 스틸컷, '너의 췌장'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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