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정말 좋네요. 여자치곤." 이 말을 차별 아닌 칭찬으로 본다면, 자신이 성차별주의자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화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은 1973년 있었던 빌리 진 킹(엠마 스톤)과 바비 릭스(스티브 카렐) 간 테니스 경기 실화를 담아낸 작품이다. '세기의 성대결'이라 불린 이 경기는 테니스 팬뿐 아니라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1972년 당시, 미국에선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이 의회 통과에도 끝내 부결되는 등,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여전히 이들의 평균 임금은 남성들의 절반을 겨우 넘는 정도였다. 

세계적 선수인 빌리 진 킹이 속한 테니스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경기 티켓 판매량은 같았음에도, 테니스협회는 생물학적 차이를 이유로 여성 리그의 상금을 남성의 8분의 1로 책정했다. 빌리 진 킹은 협회를 보이콧하고, 세계여자테니스협회를 설립해 도전에 나선다. 

이때, 전 남자 윔블던 챔피언 바비 릭스는 빌리 진 킹에게 '성대결'을 제의한다. 바비 릭스는 "여성 테니스는 열등하다", "여자들이 코트에는 있긴 해야 한다. 공을 주워야 하니까", "제모 안 하는 페미니스트와 경기해보고 싶다"라느니, 차별적 발언을 쏟아낸다. 그는 소녀 복장을 하고 경기 퍼포먼스를 하는 등 각종 방법으로 여성을 모욕해, 괴이한 남성우월주의자로 비쳐진다. 

 

 

그러나 사실 바비 릭스는 모든 것을 '쇼'로 생각했다. 과거 챔피언이었으나 현재는 도박빚에 시달리는 그는 돈이 필요했고, 다시한번 주목받을 생각이었다.

관객은 바비 릭스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극중 인물 중 누구와 가까운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챔피언 출신의 55세 남성 도박꾼이 29세의 현역 여성 챔피언에게 대결을 제의하는 이 경기에서, 정말로 괴이한 것은 누구인가. 바비 릭스일까, 혹은 "남성의 우월성을 보여줘라"라며 바비 릭스의 승리에 돈을 거는 사람일까, 혹은 "빌리에게 걸겠다. 예쁘니까"라는 남성 관객일까. 영화에서는 바비 릭스가 성차별주의자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기 위해 더욱더 오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의 모습이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단 점에서, 여전히 뼛속깊은 차별이 존재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동시에 영화에서는 빌리 진 킹의 개인적인 변화도 그려낸다. 그는 기혼자였지만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는데, 세계 1위로서의 중압감, 성대결을 앞둔 긴장감, 아내로서의 위치 등 다양한 고민을 겪는다. 엠마 스톤은 '버드맨'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췄던 안드레아 라이즈보로(마릴린 역)와 러브신을 연기했다.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은 메시지뿐 아니라 연기 면에서도 인상깊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비주얼적 변화다. 엠마 스톤은 검은색 머리와 커다란 안경 등 변화 외에도 4개월간의 집중훈련을 받았고 근육을 7kg 늘리며 실제인물과 싱크로율 100%를 자랑한다. 

빌리 진 킹은 이 성대결이 사회와 여성에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꼭 이기리라 마음먹었다. 그 결과 여성 리그 상금은 올랐고, 전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빌리 진 킹은 2015년 3월, 미국 CNN이 선정한 세계 역사를 바꾼 7인의 여성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는 40여년이 흐른 지금, 어느 때보다도 페미니즘 관련 논의가 뜨겁게 벌어지고 있는 한국 관객에게 더욱 뜻깊을 듯하다. 러닝타임 121분, 15세 이상 관람가, 11월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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