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팬들에게 ‘정지우’는 꽤 신뢰감을 주는 감독입니다. 연출 데뷔작이었던 ‘해피엔드’(1999), ‘사랑니’(2005), ‘은교’(2012), ‘4등’(2015) 등 꽤 오랜 시간 확고한 작가관으로 영화를 주조해온 그의 우직함이 최근 개봉한 ‘침묵’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침묵’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정지우 감독이 전작들에서 꾸준히 이어왔던 특징적인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는 인물이 품고 있는 욕망과 관계에 집중을 해 왔습니다. ‘해피엔드’에서는 실직한 남자가 아내의 외도를 알게 돼 집착하는 스토리를 그렸고, ‘사랑니’에서는 학원 선생과 고등학생의 사랑을, ‘은교’에서는 고등학생 소녀에게 연애감정을 품는 노인의 욕망을, 그리고 ‘4등’에서는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엄마의 모습을 소묘해 왔습니다. 관객들은 이들의 사연에 어느 정도 공감했지만, 사실 모두 사회적 통념상 ‘옳지 않은 것’이라고 규정되는 행동이었었지요.

결국 정지우 감독은 감정과 도덕 가운데의 이야기를 그려온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끝은 죽음이란 파국에 이르거나(해피엔드), 도덕을 배제한 감정만의 결론을 그리거나(사랑니), 인물 스스로 도덕적 후회를 하는(은교) 방식으로 다양했었지요. 이 다양한 결론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정-도덕에 대한 판단과 감상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침묵’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면, 배경 자체에서부터 정지우 감독의 특징이 가장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그 만큼 그의 메시지는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영화의 배경인 법정은 사회적 통념상의 도덕적 잣대를 판단하는 곳이지요. 보다 직접적인 도덕의 현장 가운데서 욕망을 품은 인물의 사연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듭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살펴보면 재력과 사랑, 세상을 다 가진 남자 임태산(최민식)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한 가지 사건을 통해 미궁 속에 빠지고 마는데요. 바로 임태산의 약혼녀이지 유명 가수인 유나(이하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지요. 평소 유나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던 태산의 딸 미라(이수경)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맙니다. 이후 태산은 그 날 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사건을 뒤쫓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검사(박해준)와 변호사(박신혜)의 입씨름이 이어지는 법정, 그리고 태산이 무언가 꿍꿍이를 꾸미는 법정 밖이 중심이 됩니다. 범인의 정체를 감춰두고 관객들로 하여금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전달하는 중에 임태산의 행동은 어떻게 봐도 ‘속물 재벌’의 악행을 조명하는 듯 보입니다. “내가 검찰총장 자리 사드릴게” “돈 드는 것 아닌데 뭐 한 번 해드리지”라는 속물 같은 그의 대사는 그를 비도덕적 사람으로 보이게끔 하지요. 당연히 영화도 그를 향한 권선징악으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정지우 감독은 도덕-감정의 갈림길에 선 인물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하지, 타인에 의해 처벌 받게 하지 않았던 전작의 흐름을 이어갑니다.

반전은 영화 후반부에 일어납니다. 진짜 ‘나쁜 놈’으로 보였던 임태산의 감추고 있던 비밀이 풀리면서 감정적 공감이 환기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의 감정, 그리고 오랫동안 딸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명확하게 전달됩니다. 이 대목에서 배우 최민식의 내공은 상당합니다.

딸의 죄악이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끼면서, 오랫동안 쌓아왔던 부와 명예를 모두 내던지고 감옥에 들어가고자 결심을 합니다. 비도덕적 지향이 사랑과 부성애라는 감정에서 비롯했다는 것. 결국 그 또한 자신의 선택으로 결말에 이릅니다.

따지고 보면 ‘침묵’은 정지우 감독의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결론을 내리는 셈입니다. 앞선 작품들이 감정이냐 도덕이냐 둘 중 하나를 취한 입장이었다면, ‘침묵’ 속 임태산은 사랑과 부성애라는 감정을 지키면서도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면서 도덕적인 참회를 하는 듯 보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이것이 보는 이들의 입장에 따라서 감동적으로 보일 수도, 불쾌하게 보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정지우 감독은 싱글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언뜻 악역이 주인공인 영화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악인이 스스로 참회를 하면서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고 있잖아요. 그 행동을 통해 자신은 사회적인 죽음을 맞았지만, 결국 딸이 새로운 삶을 살게끔 기회를 준 건데, 이 점만큼은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라고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그의 행위에 어떤 사회적 잣대를 들이밀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객들의 생각을 요청한다는 의미였지요.

‘침묵’은 누구나 살면서 고민하는 감정과 윤리의 갈림길에 선 영화입니다. 지난 2일 개봉한 이후 임태산의 행동에 대한 관객들의 생각이 갈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큰 고민을 남기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속 태산의 선택은 딸이었지만, ‘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고민해본다면 더 영양가 있는 감상이 될 것이란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고 글을 마칩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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