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중인 피아니스트 홍민수(24)가 금의환향했다. 지난달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폐막한 제11회 프란츠 리스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2위에 오른 그는 1위, 3위 입상자와 함께 8일 내한했다. 10일 부산(금정문화회관)에 이어 1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리스트 콩쿠르 갈라 콘서트’로 모국 청중에게 인사할 그와 9일 인터뷰를 했다.

 

 

조성진이 쇼팽의 젊은 대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면 홍민수는 행동적인 낭만파이자 교향시의 완성자인 리스트 연주에 있어 젊은 거장임을 차곡차곡 입증하고 있다. 부조니 콩쿠를 4위와 리스트 협주곡 특별상을 수상한데 이어 이번에 리스트 곡들의 탁월한 연주로 준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결승 무대에서 그는 ‘순례의 해’ 중 ‘이탈리아 혼례’, 벨리니/리스트의 ‘노르마의 회상’,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심사위원단은 압도적인 파워, 빠르면서도 정교한 타건, 화려한 테크닉, 깊이 있는 리스트 해석에 주목했다.

“준비한대로 만족스럽게 잘 연주한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세미파이널 3차 연주 때는 이제까지 통틀어 가장 편하게 연주했던 순간이었고요. 스트레스 없이 음악에 빠져들어서 곡을 쳤죠.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욕심을 안냈다면 거짓말이고, 그 어느 때보다 잘 치고 싶었는데 음악이 더 편하고 재미나게 다가왔어요.”

바그너, 슈만, 브람스와 함께 낭만주의 음악을 선도했던 헝가리 작곡가 리스트는 ‘피겨 퀸’ 김연아의 ‘죽음의 무도’를 비롯해 ‘헝가리 랩소디’ ‘초절기교 연습곡’ 등의 곡들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친숙하다.

 

 

“전 리스트 곡을 칠 때 더 편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소리를 낼 수 있어요. 그러다보니 내 색깔이 많이 묻어나오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스트에 대해 엄청 기교적이고 화려하다고만 생각하는데 그의 중후기 작품들을 좋아해요. 중기부터 종교적인 색채도 묻어나고, 문학에서 영향을 많이 받고, 인간적으로 더 깊어지거든요. 덜 비루투오적이고요. 그래서 리스트의 다른 면을 더 소개해주고 싶어요. 너무 좋은 곡들인데 자주 연주되질 않고, 알려지지 않은 곡들도 많거든요.”

독일 유학 5년차에 접어들며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이 뿌리를 내리는 홍민수에게 어찌 보면 리스트는 음악인생 변곡점에 딱 어울리는 음악가인지도 모른다.

“매년 콩쿠르를 하면서 많이 매웠고 내 색깔이 확실해졌다고 느껴요. 전에는 콩쿠르에서든 연주에서든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음악을 해야 하므로 절제해야했는데 이제는 더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 거 같거요. 정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발전시키고 끌어 올려서 내 음악을 더 확고히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콩쿠르로는 차이콥스키나 쇼팽 둘 중 하나에는 도전해보고 싶어요.(웃음)”

홍민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 이어 음악원에 다니다가 독일로 유학, 데트몰트 국립음대에서 마스터(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한국에서도 너무 잘 배웠지만 그래도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가보고 싶었죠. 무엇보다 이 학교 교수님의 음반을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배우고 싶은 열망에 무작정 연락해서 입학하게 됐어요. 사사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음악이 뭔지를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주시더라고요. 디테일보다는 갈래를 제시해주신 거죠. 그런 걸 배우길 원했기에 만족스러웠어요. 작곡가들에 대해 배우면서 내 색깔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고요.”

논리정연하게 또박또박 답변을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스로 평가하는 피아니스트 홍민수의 특장점은 무얼까.

“내 또래 피아니스트보다 소리의 퀄러티는 좋은 거 같아요. 제일 기본으로 생각하는 건 악보를 자세히 본 다음 곡에 알맞은 소리를 찾아내는 것이죠. 그거는 자신 있어요. 연주자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성에 따라 각자의 장점, 특징이 부각되게 마련인데 저 같은 경우는 테크닉을 내세우기 보다는 섬세함을 추구하는 편이고요.”

그에게 직접적 영향을 줬던 피아니스트는 딱히 없다. 하지만 연주를 보거나 음반으로 들었을 때 “되게 좋다”란 감탄이 나오면 절로 욕심이 생긴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찾아낸다. 그와 같은 소리, 방법 등을 배운다. 한예종 선배들인 김선욱 손열음, 그리고리 소콜로프, 클라우디오 아라우, 빌헬름 켐프 등이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옛 거장들을 좋아한다.

리스트 콩쿠르 이후 리스트의 새로운 곡들을 배울 예정이다. 더불어 그동안 집중 탐구하지 못했던 작곡가들인 하이든, 브람스의 음악세계를 파고들 계획이며 자신이 체류하고 있는 독일의 베토벤, 슈만 등을 캐낼 예정이다.

 

 

한국에서의 연주는 5년 만이다. 마지막 연주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라이징스타 기획연주회’에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협연했는데 이번에 같은 장소, 관현악단과 함께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 더욱이 콩쿠르를 통해 친분이 두터워진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라 더욱 의미가 깊다.

“3위인 러시아의 디나 이바노바는 테크닉이 너무 좋아요. 비루투오소 리스트의 색깔을 잘 살려내요. 우승자인 영국의 알렉산더 울먼은 대중성이 있는데다 그만의 리스트 색을 잘 표현하고요. 저희 셋이 다 달라요. 1부는 솔로곡들로 꾸며지고 2부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요. 1부에선 서정적이며 진중하면서 내적인 음악으로, 2부에선 리스트의 전형적인 밝고 드라마틱한 협주곡을 하려고요. 공연 때 내가 느끼는 걸 최대한 청중에게 전달하는데 치중해요. 청중에게 조금이라도 뭔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영혼을 남겨줄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에요.”

독일의 한적한 소도시에 체류 중인 그는 “친구들 만나고, 음악 듣고, 영화 보고, 맑은 공기를 음미하며 산책을 많이 한다”고 소박한 싱글라이프를 귀띔했다.

 

사진= 스톰프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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