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느와르인데, 여자가 주인공으로 꼈다고 해서 여성 중심 영화가 되는 건 아니죠. 여성을 어떤 관점에서 얼마나 제대로 담아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분량이나, 여성이 액션을 시도했느냐는 별개의 문제죠."

김혜수가 생각하는 '여성 중심 영화'의 의미는 분명했다. 

 

 

김혜수의 출연작 '미옥'과 '차이나타운'(2015)은 한국 영화계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여성 주연의 느와르다. '미옥'의 경우 여성 원톱 느와르일 것이라는 관객의 기대에 비해서는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김혜수의 진솔한 답변은 의외였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미옥'은 세 사람의 갈등과 파국을 그려낸 영화로, 언더보스 나현정(김혜수), 현정에게 끔찍이도 집착하는 조직 해결사 임상훈(이선균), 현정에게 약점을 잡힌 검사 최대식(이희준)의 이야기다. 김혜수가 무엇보다도 '미옥'에 끌렸던 건 느와르 장르에 대한 애정, 시나리오에 그려진 세 인물의 관계성에 있었다.

"느와르가 갖는 미덕이 있잖아요. 서로의 관계, 어긋남, 불신, 감정적인 복수, 실제 복수, 피의 미학, 영상의 미학…. 감정을 굉장히 밀도있게 그려낼 수 있으면서도,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진하고 씁쓸한 느낌이 남아서 좋아해요. '미옥'은 현정의 욕망이 가지는 것 대신 버리는 것, 떠나는 것을 향해있단 점에서 짠하면서도 끌렸어요. 본인이 가질 수 없는 꿈, 욕망만을 끊임없이 쫓아가는 현정에게서 느와르의 미덕을 모두 찾을 수 있었죠."

이런 인물 설정을 바탕으로 김혜수는 "너무나 잘 해 준" 이선균과는 징글징글한 집착관계를 그려냈고, "'화차'를 보면서 '저 배우 참 잘한다. 누굴까' 싶어 이름을 적어뒀던" 이희준과는 후반부 강렬한 대립 신을 찍어냈다. 

 

 

평소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김혜수는 '미옥'을 촬영하면서도 여러 제안을 했다. 독특한 가르마와 탈색 헤어스타일에 대해 아이디어를 냈고, 나현정이 강남 뷰티 살롱 주인으로 위장한 만큼, 실제 해당 직업의 사람들이 업계에서 연예인과 비슷한 존재임을 떠올려 그 모습을 반영하기도 했다. 

"상훈이 드러내는 인물이라면, 현정은 드러내지 않죠. 드러나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여자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그중 하나가 머리였죠. 시각적으로 파격적이고 신선하면서도, 위장 직업과도 무관하지 않은 스타일에 대해 생각했어요. 뷰티업계엔 최신 트렌드를 보여주시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개봉 전 캐릭터를 노출시키면 안 되니까 '굿바이 싱글' 프로모션이나 '시그널' 포상휴가 땐 더워 죽겠는데도 머리를 붙였다 뗐다가 했죠.(웃음)"

또 나현정의 스타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련되고 멋진데, 이는 극중 이야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한 예로, 후반부 액션신에서 나현정이 가죽 롱 트렌치코트를 입은 건 단순히 멋을 위해서가 아니라, 칼이 들어가지 않도록 악어가죽 의상을 입은 것이고 염산을 맞을 위험이 있어 마스크로 얼굴을 덮는다는 설정이었다. 

 

 

김혜수는 '미옥'으로 데뷔 처음으로 본격적인 액션에 도전했다. 공터, 버스 액션신만 일주일을 넘게 찍었다. 김혜수는 "다른 연기와는 달리, 액션은 촬영과 편집한 결과물이 다른 리듬으로 나와서 짐작할 수 없었다"며 첫 액션에서 새롭게 깨달은 점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안 쓰던 몸을 쓰니 당기고 아프더라고요. 총이 8.5kg 정돈데, 정말 힘든 건 들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겨눈 채 자세를 유지하는 거예요. 손이 덜덜 떨렸어요. 폐차장 액션 땐 야산이라 너무 추웠는데, 상훈의 코트가 아니었다면 큰일났을 거예요. 몸이 얼어서 잘못 부딪혔다간 뼈가 부러질 것 같단 느낌까지 있었죠. 버스 운전을 할 땐 조직원 역할을 맡으신 분들이 차에 돌진하는 신인데, 혹시 제가 실수할까봐 무섭기도 했고요."

김혜수의 얼굴로 가득 채워진 '미옥' 포스터는 그 자체만으로 눈길을 끈다. 여성 영화가 흔치 않으니 포스터 역시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인데, 김혜수는 쾌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든다고 했다. 

"이런 포스터를 볼 수 있어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께가 묵직해지며 드는 걱정도 있었어요. 앞으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이 간극을 줄여가면 좋을 것 같아요. 포스터만으로도 여성 중심의 영화가 나왔다는 쾌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예전에 '한공주'도 밀양 사건을 다룬 작품인지 모르고 포스터만 보고 '뭘까'하는 기대감을 갖고 본 적이 있거든요."

 

 

김혜수는 '미옥'에 대해 기대했던 여성 관객들의 아쉬움을 이해한다면서도, 그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속해 알게 모르게 여성 영화를 향한 많은 시도가 있었죠. 초저예산이지만 아주 웰메이드인 '용순'이란 작품도 있고요. 시도만으로도 박수 칠만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미옥'이) 기대에 비해선 미흡하고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려진 시도들까지도 무리하게 끌어내리면서 가능성을 없애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도는 늘 하는 거잖아요. 될 때까지 하고, 돼도 하는 거죠. '미옥'에서 미덕을 찾든, 혹은 이를 거울삼든, 어떤 식으로든 발판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작품에 대한 혹평 때문에) 다른 기회가 박탈된다면 너무나 미안할 것 같아요. 영화 한 편으로 모든 가능성이 다 열리는 건 아니니까요."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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