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근석·문메이슨 주연의 '아기와 나'(2008)와 비슷할 거라 여겼다면 분명 깜짝 놀랄 듯싶다. 그 설정은 비슷하나 분위기도 내용도 전혀 다른 작품이 완성됐으니. 

 

 

'아기와 나'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기획전에 이름을 올린 작품으로, '미생 프리퀄' '여름방학' 등 단편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손태겸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보석같은 감독과 배우를 배출해내는 KAFA답게 '아기와 나' 역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군대 전역을 앞둔 도일(이이경)은 여자친구 순영(장연주) 사이에 아이를 두고 동거 중이다.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순영은 갑자기 사라지고 도일은 그를 찾아 나선다.

덜 자란 남자가 홀로 아기를 돌본다는 설정은 동명의 '아기와 나'(2008)와 같은데, 해당 영화 역시 성장코드를 담았음에도 명랑하고 낭만적이었던 것과 달리 '아기와 나'(2017)에서는 현실의 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일에게 '아기와 나만 남겨졌다'는 건 분유를 타 먹여야 한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아기를 돌봐야 하고, 아픈 엄마를 모셔야 하고, 취업해 돈도 벌어야 하고, 여자친구도 찾아야 하는 도일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결혼 평균연령이 높아지고, 차근히 '2세 계획'을 세우는 이 시점에 도일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사정'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철없이 덜컥 '사고'를 쳐서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도일. 그의 대화엔 욕설이 절반이 넘고, 과거 사생활은 깨끗하지 않으며, 변두리의 삶은 그리 닮고 싶은 모습은 아니다. 

이 청년들의 삶을 분명 편견없이 들여다보긴 쉽지 않으나, 볼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끌린다. '골때리게만' 보였던 도일의 삶을 하나 둘 살펴보면,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속사정이 보인다. 모두에게는 그들만의 사정과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감독의 섬세한 시선은 물론, 건강하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이이경의 연기는 이들의 삶에 한발짝 더 가까이 가도록 마음을 열어준다. 특히 이이경의 세밀한 연기가 펼쳐져,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관객이라면 분명 '입덕'할 수밖에 없을 작품이다. 

 

 

중요한 점 하나. 청춘의 고단함을 담아냈다고 해서 영 보기 힘든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코믹한 장면들이 여럿 있어 무겁지 않게 볼 수 있고, 현실을 200% 반영한 친구들과의 대사 등이 뜻밖의 웃음 포인트다. 

결국 '아기와 나'는 도일과 순영의 성장기인 동시에 관객의 생각도 변화하게 해 주는 건 아닐까. 어느새 두 사람에 대한 마음을 열어주고, 비슷한 처지의 이들에 대한 편견에게서도 벗어나게 도와준다. 어린 부부에게 가졌던 첫인상을 곱씹어보면서, 스스로의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될 듯하다. 러닝타임 113분, 15세 관람가,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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