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균(43)은 절박한 캐릭터에 몰입할수록 연기에 물이 오르는 배우다. ‘지구를 지켜라’ ‘복수는 나의 것’ ‘고지전’ 등 다양한 영화를 통해 입증한 그만의 독특한 강점이 새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힘을 발휘했다. 지난 15일 개봉한 블랙코미디 ‘7호실’에 대해 “내가 가진 세계관, 독특한 이야기 모두 부합한다”며 만족과 자신감을 표출했다.

 

 

‘7호실’은 블랙코미디가 점차 사라져가는 한국 영화계에서 눈 여겨봐야 할 새로운 유형의 영화다. 서울의 망해가는 DVD방 7호실에 각자의 비밀을 감추게 된 DVD방 사장과 알바생의 진퇴양난을 그린다. 소소한 장면들로 시작되는 영화는 두 남자의 열혈 생존극을 통해 일련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 점이 참 매력적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 우리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면서 영화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은 영화예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을 줄 수 있는 스타일인 것 같았어요. 여러 장르가 혼합돼 있는 영화 같은데, 조금은 연극적인 면도 마음에 들었어요. DVD방이 주 무대가 돼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 안에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는 게 흥미로웠죠.”

이전에는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새로운 캐릭터 두식은 몰락한 자영업자다. 말 그대로 ‘짠내’가 난다. 야심차게 DVD방을 개업했으나 장사가 안 되는 것은 물론, 내놓은 가게도 도통 나가지를 않는다. 어쩜 이다지도 일이 안 풀릴 수가 있을까. 턱턱 막히는 현실 속에서 아등바등 안간힘을 쓰는 두식은 한국 사회의 그늘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두식은 언제나 안 좋은 선택만 하고, 성격도 좋지 못한 사람이에요. 어떻게 보면 비굴한 면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귀여운 면도 있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두식이란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와의 접점을 찾으려고 하고,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일지 고민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비교적 무난하게 살아왔던지라 한번도 두식 같은 상황에 놓여본 적은 없었거든요.”

 

 

촬영을 하지 않을 때만큼은 되도록 휴식을 취하려 하는 이유는, 평소 촬영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7호실’ 역시 촬영 기간은 짧았으나 지난한 시간이 틀림없었다. DVD방이라는 협소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블랙코미디라 하지만, 누군가 사망해서 시체를 유기하고, 마약을 밀봉하는 등 온갖 스펙타클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인물을 표현하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변화를 주는 건 힘든 일이었죠. 두식도 일반적인 보통 사람이지만, 감정 기복도 심한 인물인데 거기다 코미디의 톤까지 유지해야 했거든요. 심지어 사람들에게 공감까지 줘야 했고요. 여러 가지 특수한 상황에 놓인 두식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이해를 시킬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해야 미워하지 않고 납득시킬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해봤죠.”

영화의 백미는 ‘DVD방 결투신’이다. 두식과 알바생 태정이 7호실을 막기 위해, 또 열기 위해 긴장감 넘치는 대결을 펼친 끝에 서로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몸을 날리며 싸우는 장면은 이제껏 본 적 없는 가장 격하면서도(?) 현실적인 결투를 보여준다. 그 역동적인 장면을 촬영한 소감을 묻자, 신하균은 혀를 내두르며 “힘들었죠”라고 답한다.

“동선만 정해놨지, 합을 짜서 만든 액션이 아니어서 위험했어요. 그래도 불쌍한 두 인물이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이 잘 표현된 것 같더라고요. 서로 엉키고 목도 조르고, DVD장에 밀치고 주변 소품 이용하는 것도 전부 우리가 했어요. 그렇다고 도경수 씨와 아이디어를 주고 받아가며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건 아니고요. 액션은 말로 먼저 하면 재미가 없어져버리거든요. 우리가 멱살을 잡고 어느 지점까지 가야되는지 그 동선 자체는 정해져있으니까, 그 이상은 굳이 서로 얘기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해나갔어요.”

 

 

차근차근 적역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돌’이라는 수식어를 넘고 충무로의 기대주로 부상한 도경수가 알바생 태정 역으로 신하균의 파트너 자리를 꿰찼다. 영화 촬영에 돌입하기 전, 어린 나이의 연기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선입견 대신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도경수의 남다른 첫 인상도 그 신뢰에 한 몫 든든히 했다.

“도경수씨가 이전에 했던 작품을 봤어요.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에서 너무 잘하더라고요. 주변에서도 좋은 말을 많이 들었고요. 현장에서 메이크업이랑 의상까지 다 맞추고 난 후의 모습으로 처음 봤는데, 딱 태정답더라니까요? 함께 합을 맞춰보니 정말 유연한 배우라는 게 느껴졌어요. 사실 애드리브를 할 때에도 상대방에게서 어떤 대사가 나올지 모르니 위험할텐데, 제가 대사를 했을 때 받아치는 걸 보니 굉장히 능숙하더라고요. 본인이 태정이란 인물을 잘 가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도 도경수와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단다. 같이 작품을 하고난 후 많은 애정이 생겼지만, 둘 다 연락을 자주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미소 지으며 “성향이 비슷한 것 같다”고 덧붙인다.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작품 보는 안목을 달리 하려 노력한다. 안 해본 것에 대한 갈망은 늘상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극장에 걸리는 장르는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한국 영화 시장이 협소하다보니 배우로서 아쉬움이 뒤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언제나 독특하고 독창적인 영화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꼭 그런 영화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요. 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혼재하는 시장이 구축돼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주류 영화도 분명히 존재하고, 아이디어가 좋아 차별화되는 영화들도 공존한다면 관객분들도 충분히 새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테니까요. 예를 들어 영화 ‘더 랍스터’요. 정말 말도 안되는 설정이잖아요. 근데 그 안에서 배우들이 정말 재밌게 연기하니까 관객들도 즐거움을 느끼죠.”

 

 

20대에 연기를 시작해 어느덧 40대의 중년 배우가 되고, 데뷔 20주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게 됐지만 그다지 감흥이 없다. 배우는 1년 단위로 일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까지 밟아온 길들보다 가야할 길이 더 멀게 느껴진다.

“아직 저는 어떤 배우가 됐다고 생각할 수 없어요. 여전히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일 뿐이고, 스스로 배우로서의 평가를 내린다면 그건 제가 연기를 그만 뒀을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저는 제게 주어진 시간들이 제일 중요해요. 작품을 하건, 쉬고 있건 이 시간들에만 충실하자는 주의라 지금 내리는 평가는 유효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아직 해야 할 캐릭터나 하고 싶은 역할들도 많아요. 시야가 넓어져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배우가 되기 위해선 한참 남은 것 같네요.”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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