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계절’인 늦가을, 시네필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낭만 영화제 ‘프렌치 시네마 투어 2017’(11.16~29)이 찾아왔다. 프랑스 영화의 현재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소개되며 추운 계절에 솜이불 같은 포근함을 전달한다.
 

이번 ‘프렌치 시네마투어 2017’ 참석을 위해 내한한 세드릭 클라피쉬(56) 감독과 주연 배우 아나 지라르도(29)를 만났다. 둘이 함께한 ‘백 투 버건디’는 으레 ‘프랑스’ 하면 딱 떠오르는 두 가지, ‘영화와 와인’을 한 번에 맛 볼 수 있는 영화다. 한국 관객들과는 처음 만나는 터라 그들의 얼굴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백 투 버건디’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버건디 와인농장을 배경으로 한다. 대를 이어 최상급 와인을 만드는 과정과 함께 농장의 사계절을 담은 영상미, 여기에 흩어진 가족이 다시 유대관계를 찾아가는 스토리는 관객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물들인다. 그동안 ‘스패니쉬 아파트먼트’(2002), ‘사랑을 부르는, 파리’(2008) 등에서 정치적 불안과 기대, 청년의 고민 등을 주제로 삼아왔던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의 변신이 눈에 띈다.

“‘프렌치 시네마투어 2017’의 상영작을 살펴 보면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아나 지라르도 등 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이 나오지요. 구세대와 신세대가 어우러져 영화계가 돌아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백 투 버건디’도 마찬가지예요. 와인은 전통이자 현재를 상징하는 오브제죠, 요즘 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신구의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까지요. 이 모든 걸 영화 속에 투영하고 싶었습니다.”
  

세드릭 감독이 프랑스 영화계의 신세대 주자로 꼽은 아나 지라르도는 사실 한국 관객들에게 그리 익숙한 얼굴은 아니다. 더구나 한국에 방문하기 전부터 애정을 품고 있던 그는 한국관객들과 온전히 영화로 만나는 것에 대해 “굉장한 영광”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오래전부터 한국을 좋아했어요. 프랑스에서 한국영화가 꽤 위치가 있어서 자주 접하곤 했지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백 투 버건디’를 보여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영화는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자하는 신세대들의 이야기에요. 요즘의 프랑스 자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 분들에게 프랑스를 알릴 기회 같아요.”

프랑스는 한국과 지구 정반대에 있는 나라이지만, ‘백 투 버건디’ 속 인물들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가족애 코드는 물론, 열정적으로 술을 즐기는 프랑스인들의 면모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세드릭 감독은 한국과 프랑스를 관통하는 공감코드에 대해서도 생각을 전했다.

“이 영화에서 주된 주제는 가족애지요. 사실 어느 나라든 남매끼리 싸우잖아요.(웃음) 저도 여자형제가 둘이나 있어서 그 고됨을 알지요. 하지만 언제나 그들을 ‘가족’으로 묶어주는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요. 그게 가장 큰 공감코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술일 텐데... 아마 술 마시고 노는 건 만국공통 아닐까요?(웃음) 그리고 와인이라는 게 전통과 현대성 둘 다 중요한 술인데, 제가 본 한국도 전통과 현대성이 잘 융화된 나라더군요. 이 지점도 공감에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역할을 맡았던 아나 지라르도는 술과 가족애를 느낄만큼 친밀해진 동료들이 힘든 촬영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준 버팀목이었다고 밝혔다.

“부르고뉴 지역에는 와이너리가 참 많아요. 촬영을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기뻐하고 환영해주셨어요. 물론 촬영 중엔 술을 마실 수 없어서 포도즙을 마셨지만, 촬영을 마치고나서는 선물해주신 최고급 유기농 와인을 마시면서 놀았죠.(웃음) 그거 아시나요? 최고급 와인은 아무리 마셔도 머리가 안 아파요.(웃음) 이게 좋은 영화의 비결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는 어려서부터 남자 형제에 대한 환상이 있었거든요. 이번에 오빠 장(피오 마르마이)과 동생 제레미(프랑수아 시빌), 두 명이나 생겼어요. 너무 기뻤어요. 영화를 찍으면서도 정말 가족처럼 신뢰와 사랑, 존중을 할 수 있었어요.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좋아요.(웃음)”

  

세드릭 감독은 완벽한 표정과 연기를 포착하기 위해 “한 테이크에 스무 번씩 촬영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그 덕에 ‘백 투 버건디’는 즐거움과 다툼, 고뇌를 오가는 진폭 넓은 감정을 멋지게 담고 있다.

“저는 촬영할 때 장면마다 끊어서 가는 걸 좋아해요. 그래야 강조되는 감정을 배우들이 더 잘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 전에 배우와 소통하는 게 중요하죠. 예컨대 화를 내야 할 때는 스무 가지 정도를 찍어요. 선택을 편집할 때 상황의 뉘앙스를 고려해서 집어 넣지요. 그 점에서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늘 느낍니다. 특히 아나가 오빠 장을 10년 만에 만났을 때 기쁘고 놀랍고 슬픈 복합적인 감정을 너무 멋지게 표현해줬지요. 너무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스무 번이나 촬영한다는 게 배우의 입장에선 지치는 일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감독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나에게 “감독의 완벽주의가 다소 지치고 힘들진 않았는지” 짓궂게 물어봤다. 아나는 장난스런 눈빛을 보냈고, 이를 포착한 감독은 “늘 스무 번은 아니다”라고 다급히 변명하는 모습이 꽤나 유쾌했다.

“하하. 맞아요. 늘 스무 번은 아니죠.(웃음) 하지만 정말 특별히 까다롭게 느낀 적은 없어요. 그거 모두 좋은 영화를 위해 모두가 토의를 한 결과니까요. 사실 감독이 다시 해보자고 할 때 배우 입장에선 기쁩니다. 바로 직전 연기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연극에 비해서 더 나은 연기를 계속 시도할 수 있는 영화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과 아나 지라르도 배우에게 ‘백 투 버건디’를 보게 될 관객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세드릭 감독은 공통적으로 영화의 메시지가 한국 관객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한국은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 또 제가 직접 와서 느낀 건 전통 뿐 아니라 현대성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점이죠. 이건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 그리고 프랑스도 아주 오래된 나라면서도 현대성이 부각됐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전통과 현대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물건이 또 바로 ‘와인’이지요. ‘백 투 버건디’가 한-프 양국의 젊은이들에게 전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감독의 말에 아나 지라르도 배우도 한 마디 거들었다.

“한국의 신세대들은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싶어 하는 세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나 음악, 문화적 부분에서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신세대들에게 일정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와의 소통만큼 우리 구세대의 문화를 지키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사진 한제훈(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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