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음식을 테마로 한 영화는 두 배의 행복을 준다. 제 3회를 맞은 ‘서울국제음식영화제’는 흥미로우면서도 군침을 돌게 만드는 ‘음식 영화’로,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던 삶의 미각과 힐링을 전하는 축제다. 올해에는 개막작인 ‘엄마의 공책’을 비롯해 22개 나라의 음식영화 50편을 소개하며 국제영화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식 영화 관련 이벤트가 준비된 가운데, 에디터의 눈길을 가장 끌어당긴 건 바로 ‘먹으면서 보는 영화관’이었다. 나초 씹는 소리만 나도 눈치가 보이는 극장에서, 무엇인가를 대놓고 먹으면서 볼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심지어 홈페이지에 소개된 음식들만 해도 무려 일식, 중식, 스페인, 이탈리아 요리 등 이색적인 음식이 주를 이뤘다.

영화제 둘째 날인 17일, 이수역 아트나인으로 향했다. 야외테라스에서 진행된 ‘먹으면서 보는 영화관’은 ‘소브레메사’ 에드가 케사다 셰프가 지휘대를 잡고 관객들에게 스패니시 타파스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현장에 발을 딛는 순간, 예상치 못한 광경에 눈이 휘동그래졌다. 인터뷰 할 때나 와보던 곳이 이렇게나 바뀔 줄이야.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들이 1~2인씩 참석해 영화를 보고 음식을 음미하는 시간인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가족 단위의 관객도 수두룩했다. 인테리어 때문인지, 이탈리아 영화에서 보던 풍경이 연상되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자꾸만 솔솔 불어오는 음식 냄새가 묘한 기대감의 불을 지폈다.

 

‘먹으면서 보는 영화관’의 첫 행사라 그런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약간은 어수선한 길을 뚫고 좌석에 가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무대 왼편에 케사다 셰프를 중심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양이 보였다. 먹음직스러운 타파스 5형제가 여러 접시에 놓여 관객들의 테이블에 옮겨갈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주한 분위기를 뚫고 셰프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미소와 함께 포즈를 지은 케사다 셰프는 손이 느려 사진을 제대로 못 찍는 에디터에게 “빨리 해주세요ㅠㅠ”라며 다급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저 급박한 상황 속에서 괜찮은 사진을 건지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던지라 셰프의 사진은 패스… 대신 이 글을 통해 케사다 셰프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날 관객들이 현장을 꽉 채울 만큼 많다보니, 접시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모자라다 못해 영화 상영이 늦어지는 일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하지만 관객들은 짜증내는 기색 하나 없이 맥주를 마시며 영화 상영 직전의 즐거운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맥주들은 어디서 났느냐 하면-

 

무대 오른편에 보이는 맥주 부스에 에디터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스페인 요리에 맥주라니, 너무 완벽하잖아? 발걸음이 돌진적으로 빨라졌다. 마침 내내 길던 줄이 짧아져 있던 참이라 맥주는 금방 받을 수 있었다. 이날 관객들을 위해 마련된 맥주는 총 세 개. 모두 바바리아(Bavaria) 브랜드의 맥주였고, 무알코올, 5.0 도수, 8.6 도수의 차가운 맥주들이었다. 무알코올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어서 5.0짜리와 무알코올 두 개를 받아왔다. 오랜만에 병나발을 불 생각이었으므로 나눠주는 종이컵은 받지 않았다. 취재를 와서 맥주까지 마시다니 너무나도 짜릿한 순간이었다.

 

이날 이벤트는 모든 관객들이 접시를 다 받은걸 확인한 후에 진행됐다. 주위가 깜깜해지고, 아트나인 야외테라스에 거대하게 내려온 스크린이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이날 상영한 영화는 ‘둘을 위한 저녁식사’ ‘달콤한 만두’ ‘제비집의 여정’ ‘워터헌터스’ ‘사과’ 그리고 ‘엄마의 페스티뇨스’ 등 오감만족 국제단편경선에 오른 6편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첫 번째 영화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옆사람과 떠들어가며 감상하는 듯 했지만, 두 번째 영화가 시작되고서부터 점차 말소리가 줄어들더니 모두가 스크린에 몰입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때서야 이 이벤트의 매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좋은 영화, 좋은 음식,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이색적인 순간은 무료하던 일상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영화를 보느라 앞에 놓인 음식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허기진 배가 요동을 치는 것조차 잊게 할 정도로 흥미로운 장면들의 연속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편히 먹을 수 있게끔 핑거푸드로 준비한 스페인 요리에서 셰프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첫 번째 접시는 다섯가지의 몬타디토스, 즉 스페인식 브루스게타였다. 몬타디토스는 익숙함에서 조금 색다르게 나아간 맛, 혹은 난생 처음 맛보는 생경함을 선사했다. 특히 스페인 캐비어를 곁들인 게, 새우 칵테일 요리는 “셰프님, 정말 금손이십니다…”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로즈마리와 베리 쿨리스(묽은 소스)를 곁들인 염소 치즈 무스 몬타디토스는 씹을 때마다 앓는 소리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여성들이 유독 좋아할 맛이라고 확신한다.

나머지는 채소를 곁들인 참치와 달걀, 스페인식 오믈렛, 맥주에 익힌 양파를 곁들인 구운 소시지 등이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음식은 많이 먹어볼 수 있었지만, 스페인 요리로 재탄생한 재료들은 담백하고 특이한 풍미를 전달했다.

 

두 번째 접시 역시 휘황찬란했다. 싱싱한 하몽 이베리코 샐러드가 입안을 산뜻하게 씻어주는 듯 했다. 샐러드 위에는 만체고 치즈 시저 드레싱을 곁들였고, 미니 파프리카 구이 속은 부드럽고 담백한 대구 무스로 속을 채워 예상과는 다른 맛을 선사했다. 치킨과 블랙 트러플 크로켓은 부드럽고 부담스럽지 않은 고소한 맛을 자아냈다.

디저트는 케사다 셰프가 이날 상영된 ‘엄마의 페스티뇨스’를 언급하며 소개했던 페스티뇨였다. 스페인의 크리스마스 디저트인 페스티뇨스는 우리나라 과자인 약과와 맛이 비슷했다. 셰프는 자신의 할머니가 만들어줬던 기억을 더듬어 페스티뇨스를 만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6편의 영화 상영이 모두 종료된 뒤에는 관객들의 투표가 진행됐다. 이날 음식을 만드느라 고생했던 케사다 셰프의 스패니시 레스토랑 ‘소브레메사’ 식사권이 추첨 경품에 걸린지라, 투표에 참여하는 관객들의 열기는 상당했다. 이에 질세라 에디터도 나가는 길에 가장 좋았던 작품의 쪽지를 제출했다. 어떤 작품을 뽑았는지는 비밀이다.

한편 제3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는 내일인 21일 막을 내린다. 오늘(20일) 저녁 8시에 마지막으로 열리는 ‘먹으면서 보는 영화관’은 이탈리안 빅나이트로, ‘아트나인’의 김민아 푸드 스타일 리스트와 ‘잇나인’의 이창경, 송민희, 한현성, 김태우, 김태준 셰프 등이 대거 참석해 이벤트의 대미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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