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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높아진 성의식과 여성감독, 그리고 한국영화

요 몇 달 사이 극장가엔 ‘유리정원’ 신수원, ‘메소드’ 방은진, ‘부라더’ 장유정 등 반가운 여성감독들의 이름이 하나둘 씩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과거 여러 작품에서 자신의 능력치를 발휘하며 시네필들의 기억 속에 이름을 각인시켰죠. 저 또한 그들의 팬이라고 당당히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마음을 품고 극장까지 한 걸음에 내달려 영화를 봤지요.
 


작품들을 다 보고 난 후 제 머릿속엔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간 편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성 감독들 특유의 ‘섬세한 시선’이 생생하다는 흐뭇한 생각, 그리고 ‘큰 흥행은 힘들겠다’는 다소 부정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두 상반된 생각의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바로 흥행코드가 없다는 점.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하는 한국영화를 보면 어느 정도 코드화 돼있음을 알 수 있지요. 올해와 지난해까지만 살펴보더라도 ‘택시 운전사’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 등 아픈 역사 소재에 개인의 감성을 얹히는 영화라거나, ‘부산행’ ‘범죄도시’ ‘청년경찰’ 등 호쾌한 타격감이 살아 있는 영화들이 대표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패션유행은 빠르게 돌면서, 영화유행은 다소 천천히 돌아가는 듯합니다.

물론 이들의 개개의 작품성을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코드를 따라가면서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는 영화도 많기 때문에, 흥행 성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분명 유별난 매력이 있다는 증거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예측 가능한 코드가 나열되면서 느껴지는 기시감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요즘 한국영화에 대해 관객들이 조금은 피로를 느끼는 이유라고도 보입니다.

  


결국 ‘유리정원’ ‘메소드’ ‘부라더’에 흥행코드가 없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신선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사실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현재 한국영화계는 남성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요. 관객들의 취향도 날마다 쏟아지는 주류영화에 맞춰질 수밖엔 없었습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간 개봉한 한국영화에서 여성감독의 작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2013년 183편 중 13편(7.1%), 2014년 217편 중 16편(7.37%), 2015년 232편 중 12편(5.17%), 2016년 276편 중 26편(11.6%)이었습니다. 이렇듯 여성 감독들이 소수에 그치다보니 그들의 신선함은 메인 코드로 성장하지 못하고, 한국영화는 남성 시각의 획일화된 영화만 양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조금씩 이런 풍토가 바뀔 기미가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알지 못했던, 남성 중심적 시각의 문제점을 관객들 스스로가 깨닫고 있는 것이지요.

실례로 지난여름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에서 북한 소녀에 대한 과도한 폭력성문제, 그리고 5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던 ‘청년경찰’(감독 김주환)에서 불거졌던 여성캐릭터의 소모적 활용 등에 대한 문제가 크게 대두됐던 적이 있지요. 요즘처럼 이토록 여성영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같은 관심이 때로는 ‘너무 과도하게 젠더 감수성을 따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들의 취향이고 가치관이라면 꼭 필요한 논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관심은 한국영화계에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여성감독들이 큰 힘을 쓰지 못하는 상업영화와는 달리 향후 영화계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독립영화제들에서도 이 기조가 두드러지는데요. 오는 30일 개막하는 ‘서울독립영화제2017’의 국내 상영작 중 여성 연출자의 비율이 무려 47%(52명)에 이른다는 통계에서 가장 잘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 측도 “내용과 표현 면에서도 입체적인 영화들이 다수 늘었다”면서 의미 있는 변화에 긍정을 보냈습니다.

 


물론, 관객들의 인식변화와 여성영화인들의 성장은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변화입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멉니다. 문득 ‘미씽: 사라진 여자’ 이언희 감독이 지난 해 겨울 싱글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남겼던 말이 떠오르네요. “감독 200~300명 모였을 때, 여성감독 10명 모였다고 나아진 건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망하는 여성감독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슬로건에 공감한다. 사실 기회가 있어야 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성감독들에게 그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금 조금 나아졌다고 안주하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 있던 것일 테지요.


우리 사회가 건강한지 알아 보려는 척도로 다양성이 활용되곤 합니다. 지금까지의 한국영화계는 여성감독에 대해서는 다소 무심했지요. 결국 건강한 형태는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정치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는 것처럼 요즘 영화계엔 남성과 여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얼핏 작은 파이를 두고 싸우는 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함께 파이를 키워나가는 동반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보다 더 건강하고 큰 파이를 위해선, 10%에 불과한 여성감독의 작품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의미일 테지요. 최근 이 사회전반에 높아진 성의식과 관객들의 다양성 요구, 독립영화계의 변화가 여성감독들의 성장 단초가 되기를 살며시 바라 봅니다.

 

 

신동혁 기자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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