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밤'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기억을 말하는 두 형제의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다. 이야기는 화목한 한 가정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만성 신경쇠약을 앓는 삼수생 진석(강하늘)은 수재에 운동도 잘하고 성격까지 좋은 완벽한 형 유석(김무열)을 존경한다. 그러나 새집으로 이사한 날 진석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형이 납치당하는 걸 보게 되고, 그 후 매일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며 불안해한다.

그러던 중 유석이 납치된 지 19일 만에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유석은 해리성 기억상실 증세를 보이며 납치됐을 당시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진석은 무사히 돌아온 형이 반갑다. 하지만 곧 그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여기고 급기야 자신의 형이 아니라고 의심한다.

 

 

영화는 제목처럼, 엇갈리는 기억으로 서스펜스를 만든다. 주인공이 신경쇠약을 앓고 있다는 점을 적극 이용해 의심의 물꼬를 튼다. 진석은 유석을 의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기억이 현실인지 과대망상인지, 혹은 꿈인지를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진석은 형과 자신, 그리고 모두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며 극도의 불안 상태에 놓이고 이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여기에, 진석의 의심 속에서 종종 발견되는 유석의 이중 인격 같은 얼굴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억의 밤'은 진석의 시선과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관객은 진석에게만 의지해 상황을 바라보며 진석과 유석 둘 중 누구를 믿어야 할지를 가려야 한다. 주인공이 스스로를 의심하기 때문에 '기억의 밤'은 자칫 믿을 수 없는 화자를 내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누구'를 의심해야 하는가보다 의심이 '왜' 존재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쪽에 가깝다. 처음부터 의심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이며, 주인공의 의심이 단순한 과대망상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대놓고 판을 펼치기 때문이다.

 

 

영화의 구조 자체는 알고 나면 상당히 단순하다. 그럼에도 '기억의 밤'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기묘하게 꼬인 얼개와 곳곳에 심어진 반전 덕이다. 서스펜스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공포 영화의 연출 기법을 얹어 긴장감을 더했다. 특히 소리를 이용하는 면에 있어서 극 초반은 반쯤 공포 영화에 가깝다. 앞부분에 관객들이 동시에 놀라는 장면이 하나 존재하지만, 그 후로는 깜짝 폭탄으로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지 않으니 이런 장치를 싫어하는 관객이라면 안심해도 좋다.

미스터리 스릴러물 애호가라면 영화 중반부를 지날 때쯤엔 어렵지 않게 몇 가지 트릭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스타일이 파격적으로 새롭지는 않고 이야기의 형식도 친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가듯 한 층 한 층 비밀이 드러나고 그걸 쫓아가는 재미는 미스터리 영화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한다. 조금 뻔하지만 거듭되는 반전과 배우들의 야누스적 연기는 '푯값 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초중반부를 지나며 높아진 기대가 후반부에서 성공적으로 해소되는지는 의문이다. '기억의 밤'은 앞부분의 여러 반전과 복선, 암시, 비밀 등을 풀기 위해 고전을 면치 못한다. 깔아 놓은 떡밥을 갈무리하기 위해 내레이션과 회상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이다. 설명적으로 변질된 후반부는 아쉬움을 남긴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의 불안, 가장 친밀한 가족이 한순간에 낯선 존재로 변모하는 공포. '기억의 밤'이 관객들을 새까맣게 물들일 수 있을지 기대되는 이유다. 러닝타임 109분. 15세 관람가.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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