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무렵이었다. 턱시도에 하얀 양말을 신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자매 앞에 나타난 것은. 한동네에 살았던 사촌 언니 말에 따르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청소년기의 이 고양이는 몇 날 며칠을 동네가 떠나가라 밤마다 울었다고 한다.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불쌍한 척 동정에 호소하며 호시탐탐 본인을 데려갈 집사를 노리던 이 고양이에게 우리 자매는 드러눕기에 적격이었다. 평소 길고양이에 대한 연민은 가지고 있었지만 "Not in my place"를 고수했던 나도 그 요괴 같은 고양이가 눈에 밟혔다. 사람을 보면 숨거나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보폭을 따라 걷는 모양새가 신기하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나보다는 더 동물 애호가인 여동생은 집에 데려가면 안 되겠냐고 몇 번이나 나를 졸랐다. 하지만 돈 벌어 온다는 구실로 집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나의 매몰찬 거절에 당시 쭈구리 학생에 지나지 않았던 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밤, 일은 벌어졌다. 퇴근 후 집에 와보니 길거리에 있어야 할 고양이가 뽀송뽀송하게 목욕을 마치고 집안에 드러누워서 골골송을 부르고 있지 않겠나?

 

 

"네가 왜 여기 있어?"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인 범인은 색출해 낼 필요도 없었다. 여동생과 동네 캣맘이었던 사촌 언니, 그리고 저 문제의 고양이가 한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으니까.

사실 화가 많이 났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데 다른 생명체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건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내 인생에는 반려견조차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양이 집사가 되다니. 사룟값은 고사하고 중성화 수술비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인간의 집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목욕재계까지 하고 뜨끈한 방바닥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고양이를 다시 바깥으로 내쫓을 수는 없었다.

나의 원수 같은 자매님들은 저 고양이가 집안으로 따라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줬을 뿐이라며 적반하장으로 억울해 했다.

 

 

결국 입양할 주인을 찾을 동안만 집에 들여놓겠다고 타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사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다른 주인을 찾을 때까지 최대한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그 귀여운 생명체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나.

일부러 눈길도 주지 않고 만지지도 않았는데, 앉아 있으면 옆에 다가와서 얼굴을 비비적거리고, 그르렁 그르렁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 거리는 고양이를 계속해서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가 무슨 힘이 있나. 고향에 계신 엄마를 비롯해 주변 친구들에게 "정신 나간 동생이 고양이를 집에 들였다"며 고래고래 욕을 했던 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딱 2주 만에 그녀를 받아들였다. 길바닥에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한 고양이는 흰 양말을 신었다는 이유로 '양말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고, 2017년 12월이 다가오는 현재까지 우리 자매와 동거 중이다.

 

 

그녀를 거부할 힘은 없다. 왜냐하면, 정말로 고양이가 언젠가 세상을 정복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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