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일찌감치 엄마에게 독립을 선언했다. 여기서 일찍이라 함은 내 나이가 두 자리가 되던 열 살 무렵이다.
 

TV드라마에 눈을 뜬 나는 혼자 사는 드라마 주인공들을 보며 다짐하듯 말하곤 했다. “엄마, 나중에 내가 크면 저렇게 살고 싶어.” 나의 이른 독립선언에 엄마는 서운해 했지만, 사실 현실화 된 건 불과 1년6개월 전 밖에 되지 않았다.

독립 선언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 발목을 잡는 건 늘 돈이었다. 그런데 사회생활 5년 정도하고 보니, 돈 못 모으는 병에 걸린 나도 보증금 낼 돈 정도는 생겼다. 월세를 내면 빠듯하겠지만 어느 정도 인간적인 생활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도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시 난 6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그때 그 이별을 감당하기에 난 벅찼다.

울어서 퉁퉁 부은 눈과 한없이 침잠하는 내 감정을 날마다 마주하는 엄마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걱정하고 마음 쓸 엄마를 볼 자신도 없었다. 엄마를 비롯한 가족을 신경 쓰느라 나는 온전히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없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가 필요했다. 그렇게 난 양재동의 오래된 상가건물 꼭대기 층, 즉 옥탑방에 나만의 공간을 구했다.

자취살이 웬만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 커뮤니티를 통해 구한 집의 건물은 내 나이만큼 오래됐다. 그러나 공간은 혼자 지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주변에서 10년 넘게 자취생활을 한 선배들의 조언에 들어맞는 곳이었다.

 

‘인테리어 상태만 보고 당장 집을 평가하지 말고, 집 구조와 잠재력을 보라’ ‘주변에 어떤 이웃이 살고 있는지 살펴라’ ‘1층에 CCTV가 있는지 확인 해라’등. 이 조건에 나의 집은 나쁘지 않았다. 큰 창이 있는 방이 있고, 부엌은 분리돼 있으며, 화장실엔 욕조까지 있으니, 주저 않고 계약을 했다. 물론 오래된 집이라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몰딩 처리가 나무로 돼 있어 쩍쩍 갈라져 있는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나의 집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멀쩡하네?”라고 반응했다.

실연의 아픔을 뒤로 하고 내가 몰두한 건 이 14평 남짓한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였다. 나는 엄마와 함께 살면 주어지지 않던 선택권에 나의 취향을 물씬 드러내기로 했다. 약간은 사치스럽지만 혼자 살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1만원대 천연 섬유유연제를 샀다. 일주일에 1~2회씩 빨래 할 때 내가 좋아하는 향의 섬유유연제를 충분히 넣었다. 빨래를 널면 온 집에 좋은 향이 가득했다. 티퓨저가 따로 필요 없었다. 그 다음엔 값비싼 비누와 샴푸를 샀다. 가족들과 함께 살면 한 두달 안에 사라지는 소모품이지만 혼자 쓸 땐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비싸다며 냉장고에 좀처럼 채워주지 않던 과일을 마음껏 사 먹었다. 딸기, 망고, 멜론 등 오직 나를 위한 과일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독립생활은 매우 만족스럽다. 결혼한 사람들이 느낀다는 안정감과는 또 다른 차원의 안정감이다. 비록 내가 좋아하는 섬유유연제 향을 잔뜩 머금고 있는 빨래만이 나를 반길지라도,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게 외롭지 않다. 진심으로, 독립 만세다!

 

사진출처= flickr.com, 센트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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