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늦덕의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덕질 일기, 가슴이 오덕오덕

늦덕이 불행한 이유는 무수하다. 그중에서도 에디터를 가장 슬프게 만든 건 바로 가격이 터무니 없이 크게 뛰어버린 굿즈였다.

피규어에 눈을 뜨게 되는 순간, 박복한 늦덕 인생은 더 시궁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피규어는 예약 주문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 제때에 예약하지 않으면 제가격 주고 못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재판매라는 희망의 줄기를 놓을 수 없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재판매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남의 손 때가 묻었을 중고 물품에 만족하거나 플미가 드럽게 많이 붙은 미개봉품을 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내게 이런 처절한 처지를 부여한 장본인은 바로 수영 애니메이션 ‘Free!(프리)’의 나나세 하루카다. 대학 시절, 첫 회만 보고 재미가 없어서 때려치웠던 애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어 다시 본 프리는 내게 잊고 살았던 열정을 상기시켜줬다. 수영에 타고난 재능을 가졌지만 친구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난 뒤 수영을 그만둬야 했던, 하지만 수영을 여전히 너무나도 사랑하는 소년의 요동치는 청춘이 삭막하게 굳어버린 내 심장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나는 하루카에게 급속도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느 초짜 덕후들처럼 닥치는대로 하루카의 짤을 모았고 굿즈를 사기 위해 일본 웹페이지를 들락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토이즈워크에서 지난 5월에 발매한 1/8 스케일의 원형 피규어가 내 마음을 단숨에 빼앗아갔다. 물에 흠뻑 젖은 셔츠, 수줍은 포즈에도 표정만큼은 새침한 하루카 피규어에 반해버린 나는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캐 굿즈를 사들이던 남덕들의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사고 싶어......!!!

 

에디터가 갈망한 하루카의 물총 피규어

 

강한 열망에 휩싸인 나는 미친 사람처럼 구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존 재팬이 물량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반올림하면 가격이 15만원쯤이었다. 정가가 대략 9만원이었던 이 피규어는 도대체 어떤 사연을 갖고 있길래 프리미엄이 6만원이나 붙은 걸까. 절망스러웠다. 사회초년생에게 6만원은 굉장히 큰돈이었다.

나는 두 개의 갈림길 사이에 놓여 끝없이 갈등했다. 거지같이 살아도 하루카를 겟 하기vs하루카를 포기하고 인간다운 삶 살기, 두 개의 선택지가 연신 머리속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러면서도 물총 하루카를 향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 상사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친구 A(타애니 본진, 덕후 인생 1X년)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내게 은근슬쩍 귓속말을 해왔다.

“일본 옥션에 들어가 봐. 어쩌면 원가보다 싸게 구할 수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들어가 보면 알아”

 

야후 재팬 옥션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친구가 알려준 주소로 들어갔다. 야후 재팬 옥션, 다른 이름으로는 ‘일본 옥션’ 줄여서는 ‘일옥’으로 불리는 곳이 나를 반겼다. 지나간 굿즈를 구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사이트로 알려진 이곳에 물총 하루카의 이름을 검색했다. 공교롭게도 6일 뒤에 마감하는 매물이 올라와 있었다. 시작 가격은 3500엔. 나쁘지 않다. 아직 입찰 수도 한번 뿐! 하지만 문제는 내가 ‘외국인’이라 일본 옥션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일옥이 일본 외 거주자들에게 불친절하기로 악명 높은 곳이라는 거다. 이럴 수가... 이 나쁜 놈들? 외국인 덕후는 취급도 안 해주는 거냐?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가져가란 말이야!

예상치 못한 진입장벽에 좌절감을 느끼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나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는 어떡하냐는 내 질문에,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다니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바보야, 옥션대행 사이트를 써야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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