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접어든 선배들은 말했다. ‘당당해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사실 내가 돈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아주 최근이다. 독립할 집을 구하고 난 후, 관심은 급격히 늘었고, 주변에 하나, 둘씩 결혼한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돼 버렸다. 적금을 들고, 만기가 되면 예금을 드는 단순한 방식으로 재테크를 하면서 돈 모으는 것에 약간의 재미를 붙인 것이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나의 첫 편집장님은 당시에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주말마다 데이트 겸 동네 구경을 다닌다고 했다. 특히 날씨가 좋은 봄, 가을이 되면 한 동네를 정해서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아주 마음에 들면 부동산에도 들어가본다고 했다. 그때는 ‘아까운 주말에 왜 그런 걸 할까?’라며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사장이 합정동에 터를 닦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부동산 사장님과 친해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부자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더 현명해지기 위해 부동산을 다녀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동산을 다니다 보면 나의 현주소를 알고. 불편한 진실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왜 내가 돈을 모아야 하고, 관심을 둬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집을 구하면서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만 부동산을 다니다보면 나의 재정상태가 아주 냉정하게 보인다. 철 없던 20대 때는 사람들이 전세난을 얘기하며 울상 짓고 있을 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2억이니, 5억이니 모두 어른들만이 다룰 수 있는 수준의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동산에 가서 현실을 파악하고 나서는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사진 출처=플리커

 

내가 제대로 된 집을 구하게 위해 얼마나 돈을 모아야 하며, 대출은 얼마 정도 받을 수 있는지, 또 내가 모은 돈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돈을 구할 수 있는지 등을 비교적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동네와 살 수 있는 동네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능력이 생긴다!

비서울권 출신인 나는 한동안 서울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선택권 하나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활권이 서울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정보가 뛰어나며, 일찍이 서울에 집을 마련한 부모를 가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TV로만 서울을 경험한 나와 같은 사람들은 한강이 보이는 혹은 한강으로 가볍게 산책을 나갈 수 있는 거리의 집이 얼마나 ‘럭셔리’한 것인지 잘 모른다. 서울의 부동산 현황을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당장 엄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도 TV속 연예인들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내가 살고 싶은 곳과 살 수 있는 곳 그 중간 어디쯤으로 말이다.

부동산에 가서 중개인을 통해 집을 보다 보면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흔히 세입자들이 찾는 커뮤니티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나 부동산 앱 '직방' '다방' 등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5평, 8평, 10평이라는 숫자는 아무리 머릿속으로 상상해도 모른다. 두 눈으로 봐야 안다. 발품을 많이 들이는 만큼 부동산에서 더 많은 정보를 구할 수 있다. 내가 살 수 있는 집의 가격 변동 추이, 집세에 따른 자금 마련 방법, 가격 대비 집의 상태 등은 직접 겪어야만 와닿는 법.

 

사진 출처=픽사베이

 

또한 집을 자꾸 보다보면 현 세입자가 꾸며 놓은 인테리어에 혹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부동산 많이 다녀본 사람은 안다. 인테리어보다 중요한 건 집의 구조, 주변환경, 화장실 수압, 도배 상태 등이라는 것을. 잘 들리지 않던 부동산 관련 용어도 익숙해진다. 덕분에 관련 기사와 뉴스는 더 주의깊게 보게 된다.

내년 봄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의 계약 기간이 끝나간다. 보증금과 모아 놓은 돈을 탈탈 털면 난 어느 동네, 어떤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우선 1년 반 동안 출퇴근도 편하고, 생활도 편했던 우리 동네 부동산을 다녀보기로 한다. 어쩐지 나의 첫번째 집을 구할 때보다 자신감이 생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마음의(?) 준비를 했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