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지구 방랑자로, 폭풍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우리 집에 온 양말이는 2주가량 안정을 취했다. 그리고 급하게 구한 캐리어에 탑승해 동물병원에 갔다.

 

 

동물병원에 들어서자 수의사 선생님께선 고양이가 굉장히 날카로운 것 같다고 당혹해하며 집에서 더 안정을 취하고 데려오면 안 되느냐 물어보셨다. 이미 집에서 열흘 넘게 적응기를 거쳤다고 말했고 선생님께선 양말이를 ‘살쾡이’라고 불렀다.(다른 고양이들은 주사를 맞아도 가만히 있는다고 한다). 케이지에서 나오자마자 하악질을 하면서도 내 품에서는 가만히 있는 양말이에게 큰 연민이 느껴졌다.

선생님은 거리생활을 한 고양이치고는 귀에 곰팡이 하나 없이 깔끔하며 발톱도 집고양이 형태라고 했다. 아마 제일 귀여운 새끼 때, 누군가 데려가 키우다 제법 몸집이 커지자 버린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한 달 정도 ‘골골송’과 거부할 수 없는 흰 양말에 이어 턱시도까지 생겨 나와 언니, 지방에서 잠시 들른 엄마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양말이는 곧 발정이 났다. 오줌 스프레이(오줌을 아무 데나 마구 발산함)와 아기 울음소리처럼 우는 고양이를 데리고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동물병원에선 수술 후 마취가 풀릴 때쯤 데리러 오라 했고, 수술이 끝났다는 연락에 언니가 병원에 들르니 동물병원이 떠나가라 양말이는 케이지에서 소리 높여 울고 있었다고 한다. 양말이가 안정을 취하도록 케이지를 담요로 덮어놔 아무 것도 안 보이게 해놨는데, 커튼을 치고 언니가 얼굴을 빼꼼 들이미니 그제야 예쁜 목소리로 “야옹~” 했단다.

"이제 양말이도 우리를 주인이라고 인식하는구나! 양말이도 우리가 있으면 마음을 놓는구나!" 란 뿌듯한 마음이 솟구쳤다나.^^

 

 

양말이는 한 번도 우리 자매에게 “꾹꾹이”를 해준 적이 없었다. 꾹꾹이란 새끼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의 젖을 잘 나오게 하려고 꾹꾹 눌러주며 마사지 해주는 행동이다. ‘엄마’라는 존재만큼 큰 신뢰감을 가질 때 나오는 행동이다. 한 번도 해준 적이 없기에 난 양말이가 너무 어릴 때부터 엄마 없이 지내 이 행동을 배우지 못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함께 생활한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양말이가 갑자기 내 배 위로 올라와 꾹꾹이를 해줬다. 요것이 할 수 있으면서도 3년이 지나서야 겨~우 내게 해준 것이다. 선심쓰듯이. ㅠㅠ 이제야 나를 진정한 ‘엄마’라 여기는구나 싶어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야속한 마음도 슬쩍 생겼다.

 

 

한 길 사람 속은 알아도, 열 길 고양이 속은 모른다. 그 커다란 눈망울이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아도,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고양이 본인(아니 묘)밖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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