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는 똑같았습니다. 늘 외로웠지만 마음에 맞는 이성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고, 그래서 그저 몰려다니며 ‘솔로부대’를 자처했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며 주인공들을 평가질 하고, 나중에 난 요런 타입의 연인을 만날 거라며 희망사항을 밝히기도 했었죠.

가끔은 그런 시간들이 너무 좋아 이거야말로 ‘솔로천국’이 아니냐며 자화자찬하기도 했습니다. 평일 밤이고, 주말 새벽이고 우리는 누군가의 방에 모여 앉아 고기를 굽거나 과자를 까 먹으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묘하게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개팅을 통해 데이트를 시작하고 나서는 도무지 연락이 안 되는 친구들이 생겼고, 그렇게 한참 내버려뒀더니 청첩장이 날아오는 ‘사건’이 속출합니다. 청첩장을 보낸 이들은 ‘솔로부대’에서 어느덧 사라져 ‘커플지옥’으로 떠났습니다.

세월이 조금씩 흐르면서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라고 계속 말하던 몇 명이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배우자를 찾기 시작하는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여러 번 맞선을 보며 배우자를 물색하는 동안에는 그 이야기로 예전과 같은 ‘수다’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결혼이 결정되고 나면 그 상대방에 대한 수다는 일단 금기가 됩니다.

진정한 가족이 될 사람을 흉보거나 평가하는 건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실례니까요. 결국 편하게 나누던 연애 이야기는 옛날 모두가 싱글이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겁니다. 친한 친구를 시집(또는 장가) 보내고 나서 우울함이 심해지는 경우는 대부분 이러한 편한 대화 상대를 잃은 것에 대한 박탈감 때문입니다. 특히 대화를 통해 정신적 안정을 얻는 경우가 많은 여성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죠.

그런 과정을 몇 차례 겪다가 나 자신이 싱글에서 벗어나니, 또 이쪽에서의 입장도 보입니다. ‘커플지옥’에 오고나니 진정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싱글 친구들에게 하기란 점점 어려워집니다. 내 관심사는 이제 친구들과 꿈꾸던 미래가 아니라, 지금 함께 사는 가족과의 일상으로 기울었으니까요.

이 새로운 가족 또는 가끔은 원수 같은 이들, 즉 배우자나 자녀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를 해서는, 싱글 친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자랑으로 염장(?)을 지르는 것 같아 꺼려지고, 나쁜 이야기를 하면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실제 상대방은 관심도 없는 가족 얘기를 눈치 없이 했다가 욕 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싱글 친구에게 자식이나 남편 자랑하는 건 금물이고, 흉보는 건 더 금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결혼 뒤 절대적인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더욱 싱글 친구들을 만나기 힘들게 합니다. 사실 싱글 친구만 만나기 힘든 게 아니라, 똑같이 결혼한 친구들끼리는 더 어렵죠. 결혼하고 자녀를 둔 뒤 ‘동네 엄마’가 결국 친구가 되는 이유는 가장 만나기 쉽고 관심사와 이해 관계가 비슷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마들끼리 나이, 취미, 관심 분야가 전혀 달라도 친구로 묶.입.니.다.

그래도 같은 나이와 같은 공간, 비슷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공유하며 영화관, 거리, 여행지를 함께했던 그 친구들은 ‘아이 친구 엄마’와는 또 다른 ‘나만의 VIP’들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겨우 SNS를 통해서나 소식을 전해듣는 ‘사이버 친구’가 된 나의 싱글 프렌즈, 연말이 가까우니 더욱 그리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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