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만물이 푸른 봄철이다. 젊은이를 청춘이라 부르는 것은 그 시절이 인생의 초년기여서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해낼 기세로 약동하는 모양새가 선명하고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에서 청춘은 삼포세대, 오포세대 등으로 불리며 좌절의 유의어가 됐다. 가진 것이라곤 젊음 뿐이라는 청년은 도전보다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그런 와중에도 어떤 청년은 남다른 짓을 벌이며 세상에 의문을 던진다. 지난 4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창작 그룹 CDY에서 활동하는 두 청년 예술가 윤혁(27)씨와 김소현(22)씨를 만났다. 이들은 최근 다른 멤버인 유동혁씨와 함께 아트스페이스 담다에서 첫 개인전 'CDY 생활잡화전'을 열었다.

김소현 "학교에서 다들 '우리 졸업하면 백수잖아'하면서 웃는데, 그 말이 현실과 가깝지만 무서웠다.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하라고 주는 시기가 짧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고등학생 때까지 온갖 케어를 받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세상에 던져 놓고 '너 살아남아 봐'라는 식이다. 너무 잔인하잖나."

40대면 세상에선 중년으로 분류되지만, 예술계에서는 40대도 청년으로 흔히 불린다. 김소현씨는 예술가가 오래 살아남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예술가에게 지원을 해 줘서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밤에는 아르바이트 뛰고 낮에는 또 각자 일이 있다. (윤혁) 오빠 말을 빌리면, 호랑이 굴에 던져 놓고 살아남은 애들만 데려가는 것 같다."

 

 

CDY의 생활잡화전은 순수 미술과 상업 미술의 경계를 지향하는 듯 보였다. 이들이 4년간 해 온 일은 가방을 만드는 거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한 건데, 주변의 시선은 생각보다 곱지 않았다. 순수 미술을 하면서 느낀 회의감에 대한 반항심으로 출발했으니 학교에서도 나름 반항적인 존재였을 터였다.

윤혁 "순수 미술은 이래야 한다는 학교 분위기가 확실히 있다. 덜컥 가방 만들고, 만날 가격 붙여 놓으니까 마음에 안 들었을 거다. 배신자라고 손가락질당하는 분위기도 있다. 우리는 재밌어서 하는 건데, 이게 디자인이냐 미술이냐 하면서 자꾸 규정하려 하더라. 그런 질문을 들으면 당황스럽고, 많이 흔들릴 때도 있다. 나도 예술적인 것에 동경이 있으니까 가방을 미술적인 위치에 올리려고 프로젝트를 하기도 한다. 근데 그러다가 어떨 때는 완전히 상품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분야를 나누는 게 요새는 웃기잖나."

이들의 기획전은 '가져가는 미술관'이라는 독특한 행위를 담고 있다. 전시 중 관람객이 마음에 드는 부분을 선택하면 그 부분을 잘라서 아트워크나 가방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가격은 10만원이다. 상품과 예술 사이의 애매한 경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고 윤혁씨는 설명했다.

"우리 재주로 돈 한 푼도 못 벌면서 왜 작업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가방 팔아서 그 돈으로 작업을 해 보자 싶었다. 조금이라도 벌어서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여기서 느낀 걸 가져가면 감사하다. 가격도 이게 가방이라고 하면 비싸지만 작업을 산다고 하면 엄청 싼 거다. 사람들이 이걸 가방이라고 받아들일지, 작업이라고 받아들일지도 궁금했다."

 

 

자신의 작품이 잘리면 아깝거나 안타깝지 않을까? 윤혁씨와 김소현씨는 오히려 기분이 좋다고 밝게 답했다.

"우리가 가방을 만들 때는 대부분 '오더메이드'였다. 엄청나게 찢어지고 헤진, 이상한 바지를 들고 온 사람이 있었다. 자기가 여행을 다니다가 사고가 났을 때 입고 있던 바지라고 하더라. 이 바지로 만든 물건을 선물하고 싶다는 거다. 타인에게 쉽게 하지 못하는 얘기를 가방을 만드는 사람에게 하고, 나도 가방을 만들면서 이 사람이 상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을 함께 경험한다. 가방 자체도 재밌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삼신할미가 아기를 점지하듯 가방을 점지해 주는 거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만큼 걱정도 적지 않았다. 전시를 열기 전 불안하진 않았냐는 질문에 윤혁씨는 "엄청 불안했다"고 냉큼 대답해 웃음을 퍼뜨렸다.

"처음이니까 당연히 많았다. 그간의 설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도 있었다. 나는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걸 고해성사실에서 처음으로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판타지가 있었다. 그리고, 생활잡화전이 콘셉트인데 안 팔리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제일 컸다."

 

 

CDY는 아트워크와 가방을 4일 당시 총 11개 팔았다. '완판 작가'라는 목표가 있다고 고백하는 목소리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즐거움이 묻어났다. 착착 일을 진행하고 있으나 이런 즐거운 작업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든 예술가의 고민이다.

"목표나 목적지, 수명을 물어보면 당연히 예측 불가라고 답할 거다. 나는 가방이 돌다리 같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가방을 돌처럼 놓고 뛰어서 한 발짝 내디디고, 또 가방 하나 던져서 한 반짝 내디뎌서 가고 있는 그림이다. 우리한테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에게 좋은 물건을 만들어 주고, 이 전시고 잘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그런 생각 안 하는 것 같다. 미래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 순간에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길이 만들어질 것 같다. 무서워서 안 보려고 하는 걸 수도 있다. 지금도 잘 못 하는데 무서워서 회피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전시를 멋지게 홍보해달라고 하자 윤혁씨는 "현대 미술의 최전방, 현대 미술의 DMZ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현금 지참 필수"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소현씨 역시 여기에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CDY 생활잡화전'은 서울 마포구 동교로 아트스페이스 담다에서 오는 17일까지, 휴무일인 월요일을 빼고 진행된다.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