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서글픈 사랑 이야기가 있을까. 이성과 감정 가운데서 고뇌하는 연인의 사연은 물론, 그들을 향한 다른 사랑들의 아픈 시선까지... 이 부도덕한 불륜 스토리가 서글픈 건 화면에 가득 담긴 모든 이들의 감정이 참으로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영화 ‘스톡홀름의 마지막 연인’(감독 페닐라 어거스트)는 1900년대 초반, 스웨덴 스톡홀름에 살고 있는 남자 아비드(스베리르 구드나손)와 여자 리디아(카린 프라즈 콜로프)의 사랑을 담는다. 신문사에서 교정자로 일하는 아비드와 가난한 화가의 딸 리디아는 첫눈에 서로에게 빠지지만, 가난이라는 현실적 한계로 서로를 포기한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후, 각각 현실을 좇아 돈 많은 이들과 결혼해 살고 있던 아비드와 리디아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스톡홀름의 마지막 연인’은 제목에서부터 로맨틱함을 풍기지만, 생각보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밝히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처음 마주한 아비드와 리디아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너무도 손쉽고 빠르다. 잠깐의 대화만으로 서로에게 빠져드는 건 사실 당위가 부족하다. 사랑이 섬세하지 못하다는 건 일반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훌륭한 멜로영화는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영화는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이 몰고 올 사연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작품을 보다보면 이처럼 빠른 사랑 전개도 납득이 간다.

 

총 다섯 장으로 나뉜 영화는 아비드와 리디아의 엇갈린 사랑을 꾸준히 전한다. 앞의 두 챕터를 가난에 치인 연인이 서로를 떠나 부자와 결혼을 하고, 그토록 바라던 안락한 삶을 살게 되는 엇갈림을 그리는 데 온전히 사용한다. 본격적인 시작은 뒤의 챕터들이다.

3장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에서는 유부남-유부녀가 된 두 사람이 오페라 ‘카르멘’ 공연장에서 오랜만에 재회하고, 다시금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선 과거에서 이들은 지독한 현실에 의해 사랑을 이루지 못했기에, 그리고 관객들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기에 현재 이 같은 사랑이 불륜임에도 감동으로 느낀다. 여기까지는 여느 사랑영화와 크게 다를 바는 없다.

하지만 이후 챕터에선 이들의 사랑 앞에 과거완 또 다른 형태의 현실적 제약이 찾아온다.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의 의무가 짐 지워져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이 모든 것에 익숙해진 그들은 어깨의 짐을 다 버리고 곧장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다. 따라서 아비드와 리디아의 사랑은 각자 많은 것을 버릴 수밖에 없는, 서글프고도 아픈 사랑인 것이다.

 

‘스톡홀름의 마지막 연인’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스토리는 ‘연인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밝히는 데 많은 신경을 기울이지만, 이 작품은 ‘이들의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기는가?’에 방점을 찍는다. 아비드의 와이프 다그마르(리브 미에네스), 리디아의 또 다른 불륜남 리드너(미켈 폴스라르)에게 영화는 시선을 건넨다. 그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사랑 가운데 소외된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영화가 연출로서 많은 걸 담아내고 있다는 점도 감독의 짙은 고민이 엿보인다. 우선 화면 비율을 통상적인 와이드스크린 1.85:1 이나 시네마스코프 2.35:1이 아니라 4:3으로 구성했다는 건, 인물의 뒷배경보다 오롯이 그에게 집중하겠다는 의도적인 구성으로 보인다. 그 덕분에 관객은 배우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주연배우인 스베리르 구드나손과 카린 프라즈 콜로프의 탄탄한 연기가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러닝타임 1시간55분. 15세 관람가.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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