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양말이는 처음 ‘냥줍’을 당했던 그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냥줍’은 아니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신여성냥’이기는 했다지만, 추운 길목에서 인간에게 추파를 던지던 그 비굴했던 고양이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우리 자매의 집에 완벽 적응을 마친 고양이는 이제 안방마님이나 된 듯이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오만하고 거만한 표정과 포즈 장착을 하는 한편 처음 이집에 왔을 때 보여준 폭풍 애교는 사라지고 말았다. 상황은 역전돼 애간장이 타는 건 나였다. 이래서 고양이, 고양이 하는구나.

그러던 중 고양이의 심기를 잘못 건드려 그녀의 분노가 지붕을 뚫을 뻔 한 적이 있다. 고양이를 새 식구로 받아들이고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스산한 겨울, 우리 자매가 외출 후 집에 와보니 집 앞에 행색이 남루한 늙은 치와와 한 마리가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것이었다.

빌라 5층까지 혼자 올라왔을 리는 없고, 옷을 입은 것을 보니 주인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옷이 꼬질꼬질하고 강아지가 나이가 많이 든 것을 봤을 때, 키우던 주인이 유기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휴~이걸 어쩌나. 우리 집이 동물농장도 아니고...동물들 사이에서 우리 집에 오면 다 키워준다고 소문이라도 났던 것일까?

 

 

아무튼 커다란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강아지를 그대로 둘 수 없어 우선은 집으로 데려왔다. 추위를 피해 따뜻한 집안으로 발을 들이긴 했지만, 그 강아지에게 우리 자매의 하우스는 안전지대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슬 퍼런 고양이 한 마리가, 마치 첩이라도 맞닥뜨린 조강지처마냥 살기어린 눈빛으로 쏘아보는데 여간 무서운 게 아니었으니까. 온몸의 털을 있는 대로 세우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며 무서운 울음소리로 강아지를 위협하는데 초보 집사였던 나도 그 모습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개와 고양이는 태생부터 앙숙이라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똑 같은 처지였던 길거리 친구에게 자비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집에서 나고 자란 고양이 마냥 강아지를 째려보는데 눈으로 입으로 욕을 내뱉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혹시 강아지를 잃어버린 주인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 그 일대에 강아지 관련 커뮤니티를 죄다 검색해봤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불쌍하고 늙은 치와와를 애타게 찾고 있지는 않았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강아지까지 받아들일 순 없어 결국 유기견보호센터에 전화해 강아지를 데려가라고 부탁했다.

고작 따뜻한 물과 사료를 챙겨 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중에 친구로부터 여자 둘이 살고 있는 걸 알고 일부러 우리 집 앞에 강아지를 놔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소름이 끼쳤다. 어디까지나 추측이긴 하지만, 옷까지 입힌 나이 든 강아지를 어떻게 그 추운 겨울에 버릴 수가 있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양말이도 길거리에서 오래 생활한 것 치고는 상태가 아주 양호한 것을 보니, 귀여운 아기 고양이일 때 집에서 키우다, 몸집이 제법 커지자 길거리에 버린 것 일수도 있다.(이것도 추측이지만)

하필 고양이가 있는 집에 잠시 머무르게 돼 구박만 받다가 간 그 치와와는 어떻게 됐을까.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몹시 아프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양말이가 그날따라 뺑덕어멈으로 보이고, 팥쥐처럼 보였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유기 또는 유실되는 반려동물이 연간 9만마리에 달한다. 실제론 이보다 몇배는 많을 것으로 동물보호단체들은 예상한다. 동물보호법상 유기동물은 공고 후 열흘 이내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 소유가 되고 보호소 사정에 따라 안락사시킨다. 안락사로 숨을 거두는 유기동물은 반환되는 숫자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대만의 경우 안락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부디 더 이상은 인간으로부터 버림받는 동물이 사라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그리고 키우던 동물을 유기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 그들에게 자비란 없을 것이다. 본인이 했던 그대로 돌려받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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