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 성폭행 사건의 전모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권력을 이용한 성폭행 범죄의 심각성이 안방극장에 분노와 성찰을 동시에 안겨줬다.

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3번의 잔인한 응답, 한샘 성폭행 사건'을 다뤘다. 김지영(가명)씨는 지난해 12월 대학과 기업간 산학협력의 일환으로 실시된 실습에서 교육을 맡은 강모 계장을 처음 만났다. 교육생들 사이에서 무섭기로 유명한 강계장은 김지영씨를 주요 타겟으로 삼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진 건 한달간의 교육이 끝날 무렵 벌어진 한 사건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동기들과 술을 마시던 지영씨는 화장실에 갔다가 위에서 휴대폰으로 자신을 몰래 촬영하는 남자 손을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알고보니 범인은 남자 동기였다. 동일 범죄로 집행유예 중이었던 그는 구속됐고 징역 8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강계장은 김지영씨를 앞장서서 도와줬다. 이후 김지영씨가 한샘 수습사원으로 정식 출근한지 3일째 되던 날, 팀 회식이 끝나고 자정 무렵 강계장과 연락이 닿은 지영씨는 맥주 몇잔을 마시고 새벽 2시가 다돼서 귀가길에 나섰다. 하지만 강계장은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온 뒤 지영씨를 데리고 모텔로 향했다. 몰카 사건 때 자신을 보호해준 사람이라 큰 의심 없이 들어갔던 지영씨는 강계장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토로했다.

반면 강계장은 모텔에 간 건 강계장의 독단적인 행동이 아니었고, 모텔에서 함께 맥주를 마셨고, 지영씨가 피임기구 착용을 이야기한 점을 들어 성폭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강계장 측 김형민 변호사는 방송에서 "모텔에서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강간인지 아닌지는 신만의 영역이다"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지영씨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증거불충분,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리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 취재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 담당 조사관이 바뀌어 수사가 늦어졌고, 모텔 CCTV는 지워져 있었다. 해당 모텔 직원은 "경찰이 온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당시 수사팀은 ”지영씨와 연락이 잘 안됐고 사건 한 달 후 고소 취소장이 접수돼 종합적으로 결론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작진의 휴대폰 포렌식 의뢰 결과, 경찰의 전화연락은 고소취하 이후에 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영씨는 고소취하 이유에 대해 집안에 사건을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강계장이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집요하게 연락하고 찾아온 데다 교통사고, 몰카사건 범인의 소취하 요청이 동시에 밀려들며 자포자기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한샘의 대처 방식도 공분을 일으켰다. 경찰 신고 후 지영씨에게 한샘 인사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법무팀에 제출했던 진술서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 무고죄로 고소당할 수 있으니 함께 수정하자며 1번은 강제로 성폭행 당했지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2번은 강제 수준은 아니었고 강계장의 처벌과 징계를 원하지 않는다 중 택일을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진술서를 수정한 탓에 강계장의 징계는 해고에서 정직 3개월로 낮아졌지만 김지영씨는 풍기문란 행위로 10% 감봉 대상이 됐다. 심리적으로 고통받고 있던 지영씨에게 이번에는 인사팀장으로부터 상담 연락이 왔다. 인사팀장은 지영씨를 부산 횟집에 데려가 1인당 15만원짜리 코스를 사준 뒤 회사에서 예약한 호텔에서 상담을 하자며 데려가서는 추행을 시도했다. 지영씨는 가까스로 동기에게 연락해 현장을 빠져나왔고, 이후 인사팀장은 횡령 혐의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이후 한샘 내부에서는 김지영씨가 꽃뱀이라는 소문이 돌었고, 지영씨는 결국 휴직했다. 한샘 측은 여성을 상대로 하는 회사이므로 입단속을 부탁했으나 지영씨는 복직을 앞두고 포털사이트에 자신이 겪은 일을 폭로했다.

 

 

한샘 측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지영씨가 풍기문란 징계를 받은 이유에 대해 "풍기문란은 강계장의 징계 사유고, 김지영 씨 징계사유는 허위보고였으며 표기를 잘못했다"고 말했다. 진술서를 바꾼 건 인사팀장의 권유였는데 한샘은 왜 지영씨에게 허위보고라는 징계를 내린 것일까. 한샘 측은 인사팀장의 독단적인 행동이었기에 회사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날 이나영 교수는 "사람들은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완전히 적대적 관계이기를 원한다. 가해자는 뿔 달린 괴물이고 피해자는 아주 순수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그 이분법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지 않다. 심각한 성폭력 범죄일수록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피해자라고 하는 상이 있다. 순결한 여성, 적극적으로 피해 상황에서 죽을 만큼 대응해야 하는 여성이라고 보는 거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피해자가 죽을 만큼 거부했느냐’에 집중되는데 ‘동의를 했느냐’로 인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방송 말미에 유재석, 이준기, 에릭남, 타이거JK, 김동현, 유병재, 표창원 의원 등은 성폭력의 심각성을 고취하는 것과 아울러 ‘동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남성들이 행하는 성폭력에 대해 같은 남성으로서 침묵했던 점을 반성하며 “앞으로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MC 김상중 역시 클로징 멘트로 “저 역시 침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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