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송민제(22)에게 2017년은 뜻깊은 한 해였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할 준비에 바쁜 12월, 가슴 벅찬 시간을 세공한 청년을 만났다.

 

 

지난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7회 다비드 포퍼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22개국 104명의 젊은 첼리스트들이 출전했는데 연령별로 이뤄진 5개 카테고리 가운데 카테고리 5(1994-96년생) 1위와 함께 전체 1위인 대회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2015년 루마니아 에네스쿠 콩쿠르를 시작으로 폴란드 루토 슬라브스키 콩쿠르에 이어 세 번째였어요. 포퍼의 ‘러시아 노래에 의한 환상곡’, 쇼스타코비치 첼로협주곡 1번 등은 평소 제가 잘 했던 곡들이라 즐기면서 연주했어요.”

체코 태생이지만 헝가리 부다페스트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며 활약했던 포퍼이기에 헝가리 청중들은 한국에서 온 젊은 연주자의 성숙한 해석과 숙련된 연주에 뜨거운 반응을 나타냈다. 펜데르츠키 첼로협주곡으로 1차 경연을 마무리했을 때 보통 콩쿠르에선 심사위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는데 커튼콜까지 나올 만큼 격한 호응을 해줬다.

“연습 전이나 콩쿠르 전에 김연아 선수의 영상 많이 보는 편이에요. 클린 연기로 정평이 나 있는 피겨스타지만 많은 경기에서 사소하거나 큰 실수를 하잖아요. 나 자신이 실패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실수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채찍질을 많이 하곤 하죠. 클래식 음악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건축물, 음식, 의상, 미술작품을 많이 찾아보고 기회가 되면 현지에 가서 직접 체험해보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겼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다수 배출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이 지난해 처음 생겼다. 참가 기간 동안 벨기에의 고성에 머무르며 과제물을 받아 경연을 펼치는 작업이 정말 새로운 경험이 될 거 같아서다.

“콩쿠르는 열 몇 가지의 과제를 단시간 내에 소화해야 하는 과정을 통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트레이닝을 시켜주거든요. 또 연주활동을 하려면 적당한 커리어가 필요하므로 공적 자료가 충분히 모아질 때까진 출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년엔 5월에 열리는 프라하 스프링 콩쿠르와 통영 윤이상 국제 콩쿠르에 출전할 예정이에요.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성숙한 마인드를 가진 연주자가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5세부터 첼로를 시작했다. 당시엔 첼로보다 피아노에 더 애착이 갔다. 피아노는 충분히 잘 치니까 첼로 레슨을 더 받자는 어머니의 권유에 활을 놓지 않았다. 철이 들어가며 깨달았다. 피아노든 첼로든 모두 음악의 도구일 뿐, 음악 자체를 좋아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함을.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어느 순간부터 음악이 없는 삶은 생각하기 힘들었던 듯해요. 당연하다는 듯, 첼로로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세상엔 아름다운 음악이 너무 많아요. 청소년기엔 패기와 체력으로 좋아하는 다른 악기 곡이 있으면 첼로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등 욕심을 많이 부렸죠.”

 

 

그럼에도 첼로는 이제 그에게 운명이자 분신이다. 변화무쌍한 면에선 다른 악기들을 압도한다. 엄마 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한가 하면 굉장히 차갑고, 때로는 화려하다. 중후한 저음과 치솟는 고음 등 음역대 역시 넓다.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은 게 첼로의 매력이다.

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은 비운의 영국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다. 완벽한 기교와 풍부한 음악성을 뿜어냈던 그는 42세에 요절했다.

“선생님들이 모방한다는 지적을 해주실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았죠. 대부분의 연주곡이 굉장히 느리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연주하는 엄청난 능력을 지녔어요. 빠른 것보다 느린 게 훨씬 더 어렵거든요. 테크닉 면에서 뛰어난 요즘 연주자들이 많지만 20세기 그의 감성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듯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4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내년에 전문사(대학원) 과정에 들어간다. 해외유학을 떠나 새로운 것들을 체험하는 게 음악적 재산이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전문사 과정을 마친 뒤 독일로 유학 갈 계획을 조끔씩 세워나가고 있어요. 클래식의 본고장이자 좋은 선생님들이 대부분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송민제는 색깔과 의상에 관심이 많다. 데뷔 무대였던 2014년 ‘금호 영 아티스트 연주회’부터 시작해 연주회 때마다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셔츠를 입고 출연한다. 의상과 컬러로 음악적 메시지를 전달할 부분이 많다고 여겨서다.

 

 

“지중해의 뜨거운 여름을 연주해야 하는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채 하는 것도 연기자로서의 태도는 부족하다고 여겨요. 2015년에 색채감 풍부한 인상주의 작곡가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연주했을 땐 하늘하늘한 시스루 시폰 소재에 블루에서 화이트까지 그라데이션이 되는 컬러의 드레스셔츠를 입었어요. 소매에 큐빅을 달아서 포인트를 줬고요.”

서울 강북 수유동 본가에서 독립해 학교 근처인 강남 서초동에서 자취하고 있다. 강의와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하지만 틈틈이 악기 테스트나 녹음, 소규모 연주회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지금 몸담고 있는 소속사도 인터넷에 악기 사운드 샘플을 올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인연을 맺게 됐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면 스스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음악을 하게 되면 감정소모가 많이 생기고 심적 여유가 없어지는데 일상에서 여유와 행복을 소소하게 찾으려고 노력해요. 마음가짐에 대한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커피 한잔, 지나가면서 듣는 음악 한 곡을 여유롭게 감상한다든가...”

좋은 연주자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음악은 항상 혼자 할 수 없는 직업이에요. 협연하는 사람들이 있든가 청중이 있잖아요. 그러므로 나를 치켜세우기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되는 게 좋은 연주자의 태도라고 여겨요”란 답변을 내놓았다.

2017년은 그에게 의미 깊은 한 해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 역시 “굉장히 바빴으나 의미로운 일들로 가득 찼으니 축복이다”며 '슈퍼 그레잇' 미소를 지었다.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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