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곁에 있는 누구와 척을 두고 산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가까운 친구와 사소한 말다툼을 해도 몇 시간 안에 화해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어떤 계기로 친구와 졀교한 적이 있는데, 한동안 그 친구가 꿈에 나와 괴로워했던 적이 여러 번이다. 그런 내가 요즘엔 좀 변했다.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내가 터득한 것 중 하나는 포지셔닝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둥근 성격을 가진 사람은 결코 그 끝이 좋지 않다. 쉽게 상처받고, 괴로워진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차라리 일은 잘하지만 싸가지 없이 사는 게 낫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후배에게 쉽게 말을 놓지 않는다. 10살 넘게 차이 나는 후배에게도 깍듯하게 이름과 함께 존칭어 혹은 직함을 붙인다. 내가 격식을 차리고, 예의가 바를수록 그 후배 역시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한다. 물론 너무 딱딱하거나 어색하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 안될 때는 트집 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부당한 일을 겪어 항의해야 할 때는 흥분이 되지만, 애써 감정을 숨긴다. 말로 하면 버벅거리고, 나의 감정이 드러날까봐 문자나 메일을 쓴다. 요목조목 따지기에 좋다. 피치 못하게 말로 표현해야 한다면 포스트 잇에 일목요연하게 할 말을 정리해서 항의한다.

그리고 난 결코 친절하지 않다. 대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될 수 있으면 없애려고 한다. 회사에서 일도 잘하는데, 성격까지 좋은 사람은 ‘호구’되기에 알맞다. 그런 평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조금 차가운 성격을 가졌다는 평을 들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무리하게 나에게 일을 떠넘기거나 곤란한 부탁을 하지 않게 철벽 방어한다.

 

 

주고받는 것도 명확히 한다. 어떻게 보면 꽤 합리적인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정 없다’ ‘계산적이다’ ‘이기적이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공과 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만이 느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면 작은 호의라도 반드시 표현한다. 카카오톡으로 커피 한잔 쿠폰을 보내더라도 말이다. 사생활은 웬만하면 말하지 않는다. 싸가지 없이 살기로 했다면 어느 정도 외로워질 각오는 해야 한다. “휴가 때 뭐해?”라는 질문에 상냥하게 모두 답할 필요가 없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든 걸 지켜서 내가 싸가지 없냐고? 글쎄...옆자리에 앉은 상사에게 물어봐야겠지만,어쨌거나 한결 회사생활이 단순해진 건 사실이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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