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참 고민이 많은 나이다. 흔히 말하는 ‘아홉수’가 자꾸만 발목을 끈끈하게 붙드는 것 같고, 곧 다가올 서른이 괜스레 두려워지기도 한다. 더구나 아직 무언가 이룬 게 없다는 생각에라도 빠지게 되면 그 두려움은 더더욱 심화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3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가 돼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홉수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도 ‘내 멋대로’ 꿈을 좇는 이가 있다. 스물아홉 살 남자 정다빈은 언뜻 세상 기준에선 이해하기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취업 대신 아르바이트, 그리고 유튜브 활동, 비혼주의 등등. 듣기만 해도 남다른 그를 만나 꿈을 좇는 청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보편적으로 20대 후반의 청년들은 취업과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것과 달리, 현재 정다빈은 취업 대신 식당과 웨딩홀 주방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삶을 선택했다. 한 달 벌이가 혼자 쓰기에 부족한 돈은 아니지만, 넉넉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그의 말투에서는 불안함은 한치도 느껴지지 않는다.

“취업을 하지 않는 건 아무래도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요. 자의 반 타의 반이랄까요. 애초에 어릴 때부터 취업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영화나 책, 술 등에 더 관심을 뒀죠. 그게 몇 년 째 이어지다보니 취업할 자격도 되는 것 같질 않더라고요.(웃음) 가끔 통장잔고를 보면 불안감이 불쑥 튀어나오는데, 그 불안감이 취업하고 싶지 않은 마음보다는 훨씬 작아요.”

물론 그가 취업을 아예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도 시작점에선 보통 청년들과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방향으로 남들이 다 그렇듯 취업을 택했었다. 

“저도 물론 취업을 한 적이 있어요. 다녔던 대학교에서 조교로 2년 정도 일을 하고나서 작년에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지요. 영화 평론가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그 계통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자유로운 느낌의 회사였지만, 사람-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꽤 크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에 있어봐야 스트레스만 늘어나겠구나 싶어서 한 달 정도 일하고 나왔어요.(웃음) 제가 바라던 일과 조금 차이가 있기도 했고요.”

 

정다빈이 취업이라는 안정감 대신 택한 건 ‘영화 비평’이라는 꿈이다. 어른이 돼갈수록 꿈보단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지만,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실보다 더 꿈을 생각하게 된다”고 전했다. 그가 이토록 영화에 심취하게 된 건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군대 휴가를 나왔을 때, 우연히 ‘포 미니츠’(2006)라는 영화를 보게 됐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대단한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영화 본다는 것에 대한 새로움을 느꼈죠. 예술과 상업을 오가는 모습이 꼭 갈피를 못 잡는 제 삶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영화 비평가로의 꿈을 키워온 그는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붕가붕가 조선극장’을 연재하며 독자들에게 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직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그는 직장을 다닐 때보다 이 일에서 더 큰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예전부터 영화 비평을 하고 싶었어요. 글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최근엔 사람들의 관심이 글에서 영상으로 변화하고 있더라고요. 영화는 어쨌든 대중매체잖아요. 대중의 니즈가 있는 방향에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았죠. 하지만 문제도 많아요. 영상을 배우거나 다뤄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아직 약간은 난잡하고 어설픈 것 같아요. 제가 노력하고 개선해야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노력과 힘듦이 꽤 즐거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스스로를 3포세대라고 생각하느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에 정다빈은 “보편적인 기준에선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며 웃어보였다. 자발적 3포인(人)인 그에게 ‘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3포가 연애, 결혼, 출산 포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연애를 포기하진 않았지만(웃음), 대신 취업을 포기했으니 3포가 맞네요. 근데 사실 행복이라는 게 사람에 따라 다른 거잖아요. 이런 말이 유행한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살아야 행복한 거야’라며 사회가 행복의 틀을 정해버리는 것 같아요.

포기라는 말 자체가 조금은 패배감의 느낌이 강한 것 같은데, 저는 절대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행복이 취업과 결혼, 출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아르바이트를 해도 ‘노동의 가치’를 알고 있으니 만족하게 되더라고요. 또 결혼을 하지 않아도 저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행복하게 되지 않을까요?”

  

정다빈은 현재 자취 10년차, 그리고 베로와 네로라는 고양이를 기르는 냥집사, 베테랑 주방 아르바이트생 등등 다채로운 싱글라이프를 살고 있다. 삶의 만족도에 점수를 매겨달라는 질문에 “수치화 할 순 없지만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불만족스러운 점도 있지요. 솔로라는 거?(웃음) 나머지는 모두 만족스러워요. 가족, 회사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어떤 관계 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제약이 많잖아요. 예를 들어 갑자기 부산에 가고 싶어질 때, 회사에 다니거나 가족과 산다면 그들을 이해시켜야만 하죠. 근데 저는 거침없이 훌쩍 떠날 수 있잖아요. 만족스러울 수밖에요.”

마지막 질문으로 “서른 살까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현재, 기분이 어떻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왠지 멋이 뚝뚝 떨어졌다. 자유롭게 사는 싱글남의 품격이 느껴질 정도였다.

“별 생각 없어요.(웃음) 나이 드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이것조차 참 쓸모없는 구속이라고 생각해요. 1년이 12달이 아니라 24달이었으면 아직 10대인걸요. 그러니까 서른 살이 된대도 암울할 이유가 없죠. 현재 20대 중에 괴롭지 않은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인생의 전성기는 40대부터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신체적으로 약해지겠지만, 인생내공이 쌓이고, 진짜 남자의 멋이 생길 것 같아요. ‘청춘’이라는 단어에도 별 미련이 없어요. 전 봄보다 초가을을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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