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프레이징, 편안한 감정으로 음악 본연에 충실한 것으로 정평이 난 피아니스트다. 올해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으로 누구보다 빛나는 한해를 일군 선우예권이 숨 가쁜 연말 행보를 이어간다.

 

 

수상 이후 국내 첫 독주회인 4개 도시 리사이틀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5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 리사이틀(17일),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20일), 대구콘서트하우스(25일)로 이어진다. 22일에는 강남 논현동 클럽 옥타곤에서 열리는 ‘제14회 옐로우라운지’의 주인공으로 나선다. 공연 퍼레이드를 앞둔 그와 인터뷰를 나눴다.

“2017년은 정말 뜻깊은 상들을 많이 받은 한 해였어요. 아무래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이 저에게는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었죠.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런 결과도 없었을 거예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저 또한 누군가에게 인간적으로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 자극을 주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중학생 시절 이화경향 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하며 푸른 떡잎을 보인 그는 18세에 프라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인터라켄 콩쿠르, 윌리엄 카펠 콩쿠르, 센다이 콩쿠르, 방돔 프라이즈(베르비에 콩쿠르) 등 무려 7개 국제대회에서 우승 퍼레이드를 벌였다.

또래의 임동혁 임동민 김선욱 손열음 등 유명 피아니스트들에 비해 국내에서 과소평가됐지만 실력파로 꼽혀온 선우예권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세이무어 립킨을 사사하고 매네스 음대에서 리차드 구드를 사사했다. 이후 독일로 거처를 옮겨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베른트 괴츠네를 사사하고 있다.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그의 신년계획 그리고 30대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30대에도 지금처럼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보다 많은 분들 찾아뵙고 싶어요. 2018년에는 유럽 연주 일정이 많아져서 한국을 찾아올 기회가 올해보다는 적을 예정이라 아쉬워요. 그래도 4월에 통영에서 리사이틀 연주를 할 예정이에요. 3월31일 개막하는 2018 통영국제음악제는 처음 가보는 것이기도 해서 특히 기다려져요. 게다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들려드릴 예정이라 더 많은 준비를 할 것 같습니다.”

연말 연주 일정이 빼곡하다. 리사이틀에서는 그레인저가 편곡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중 ‘사랑의 듀엣’,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프로그램인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9번, 특유의 깨끗하고 폭발적인 연주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6번, 스케일이 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라벨의 ‘라발스’ 등을 선곡했다.

유니버설뮤직이 주도하는 신개념 클래식음악파티 ‘옐로우라운지’에선 대중의 귀에 친숙한 ‘죽음의 무도’ ‘결혼행진곡’ ‘라발스’ ‘위안 3번’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캐럴 등을 연주한다.

“4개 도시 리사이틀을 계획한 건 보다 많은 분들을 찾아 뵙고 싶어서였어요. 청중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그날, 그때, 그 시간 제가 연주하는 음악 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슴에 조용하게나마 무언가 담아 가실 수 있도록 더 연주에 집중하려 합니다.리사이틀에선 제가 반 클라이번 우승하기까지 연주했던 곡들로 구성했어요. ‘옐로우라운지’ 공연은 제 음반에 수록된 곡들과 평소 애정하거나 앙코르곡으로 자주 연주하는 곡들로 구성했습니다.”

 

 

최근 그는 JTBC 예능프로그램 ‘이방인’을 통해 독일 뮌헨에서의 일상을 보여줘 신선한 감흥을 안겨주고 있다. 반려견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검은색 마스크팩으로 피부관리에 신경을 쓰는가 하면 뭉친 어깨를 풀며 시원함을 즐기는 청년의 푸근한 모습으로 인해 ‘뮌헨 푸’ 애칭을 얻고 있다.

“시대의 흐름이 급속도로 빨라지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클래식에 관심이 덜 하신 분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기 때문에 젊은 연주자들이 어느 정도 변화에 맞춰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소셜미디어 활동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관객들에게 다가가 클래식음악을 자연스럽게 느끼실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방인' 출연 결정은 고민이 많이 따르기도 했지만 긍정적일 거라 여겼어요. 저의 어머니께도 그렇고 연주자의 일상에 대해서 궁금하신 관객 분들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선우예권은 정말 좋은 취지이지만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단어는 어찌 보면 자극적이고 부정적으로 보실 수도 있는 단어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0~300년 전 클래식 음악이 당대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듯이 앞으로도 현대인들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주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해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이제까지와 그랬듯이 새해에도 그의 연주는 왕성하게 울려퍼질 예정이다. 그가 현재 집중하고 있는 레퍼토리, 시도할 계획인 레퍼토리에 대해 질문했다.

“다양한 곡들이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작곡가에 중점을 많이 두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편이에요. 2018년도에는 몇 가지 다른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데 우선은 슈베르트 즉흥곡 Op.142와 브람스 소나타 2번을 시도할 예정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세계 곳곳의 이방인을 자처하며 살아가는 도전정신과 뚝심이 한파가 몰아친 연말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사진= 목프로덕션, 유니버설뮤직,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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