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때 치료만 받으면 그 어떤 질병보다 생존 확률이 무척 높지만, 치료시기를 놓치면 사망 확률이 대거 높아지는 외상환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내 권역외상센터의 현실은 참담했다.

1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칼잡이의 비망록- 외상센터의 민낯을 기록하다’ 편을 통해 권역외상센터의 실상을 파헤쳤다.

 

 

권역외상센터는 성인 기준으로 3층, 소아기준 2층 높이에서 추락했거나 시속 32km/h 자동차와 충돌한 경우, 총·칼·파이프 관통상을 당했거나 두군데 이상 뼈가 부러진 경우 24시간, 365일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인력과 장비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열악한 지원과 운영문제 등으로 인해 무용지물이 돼버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11월13일 국내외의 관심은 주한미8군 더스트호프팀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을 맞은 북한 병사 오청성씨를 살린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에 집중됐다. 이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예상과 달리 권역외상센터의 암담한 현실에 대해 밝혔고 이후 청와대 게시판에는 국민청원이 폭주했다. 정부는 닥터헬기 5대 배치와 200억원 이상의 예산 등 추가지원 등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요즘 돌아가고 있는거 보면 곧 끝날 것 같다. 정말 좌절스럽다. 2011년을 보는 것 같다"는 뜻밖의 반응을 드러냈다. 2001년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구해내 국민영웅으로 떠오르면서 권역외상센터 설립 및 지원 약속이 쇄도했으나 용두사미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국 종합병원 다섯 곳에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권역외상센터에는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각과의 협진이 바로 이뤄진다. 병원 도착 후 30분 안에는 필수적 수술이 가능하도록 했다. 권역외상센터는 2017년 현재 전국 17곳이 지정돼 있고 9곳이 운영되고 있다.

제작진에게 E권역외상센터 관계자라는 제보자의 연락이 왔다. 그는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를 뽑질 않았다. 월급이 나가는 거고 외상센터는 국고지원이 되니까 외상센터 인원을 응급의학과처럼 같이 돌렸다"며 “이를 거부하는 전문의를 계약 해지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00대학교병원 홈페이지 쳐봐라. 이름보지 말고 얼굴을 봐라"고 말했다. 1억2000만원의 국고 지원은 받지만 근무하지 않는 의사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대전 권역외상센터 측은 소속 의사들의 근무형태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해왔다.

이에 복지부 측은 "처벌해 지정을 취소했을 경우에 지역 주민들이 피해볼 수 있다는 안타까움이 복지부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솜방망이 처벌 속에 제작진이 찾은 또 다른 권역외상센터에서는 외상환자를 보는 조건으로 지원비를 받고 있는 외상센터 전문의가 일반 환자를 보고 있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전국 권역외상센터 138명의 의료진을 대상으로 근무 환경에 대해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근무했다는 의료진들이 60.9%, 한 달 중 야간 근무를 한 횟수는 7일~10일이 42%로 가장 많았다.

미래는 더 큰 문제다.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려는 의료진이 없는 상황이다. 공고를 내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 지난 2014년 보건복지부에서는 외상수련센터를 지원했지만 예산을 지원해줘도 선뜻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말그대로 악순환이다. 권역외상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에게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수술을 하려면 마취과의사, 마취보조, 간호사 2명, 집도의와 2명의 보조의사가 필요하다. 최소 7명이 필요하다. 수술 후 중환자실로 옮겨지면 계속 간호 및 의사인력이 붙어 있어야 한다. 인력이 대거 투입되기에 환자를 볼수록 적자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환자를 살리려 한 행위가 때로는 과잉진료라는 이유로 보험공단 지원에서 삭감되는가 하면 환자가 사망하면 이용된 고가 의료기구에 대한 금액은 병원이 부담해야 한다. 소방헬기를 이용하는 것도 치료비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전문 의료인력 인건비와 닥터헬기를 늘리고, 의료수가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의사들을 대상으로 정부에서 내놓은 개선방안이 실효성이 있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94.8%가 '아니다'였다. 현장 의료진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예산 지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외상환자는 가난한 사람이 많다. 부자들은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직업을 갖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권역외상센터에 실려오는 이들의 상당수는 블루컬러 계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이국종 교수는 "이해가 안 된다. 정치권이나 어느 정당이나 다 노동자 농민을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하는데 이쪽을 진정성 있게 들여다보는 분들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권역외상센터는 늘 사건이 생길 때면 반짝 주목 받았지만 이내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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