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가 BLM(Black Lives Matter,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세리머니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흥민의 상황을 보면 이 세리머니는 불필요해 보일 수밖에 없다.

EPL은 올시즌 경기 시작 전 무릎을 꿇는 BLM 세리머니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에 인종차별 반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최근 손흥민이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이 세리머니가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고 있다.

지난 12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2020-2021시즌 EPL 31라운드 토트넘 홋스퍼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열렸다. 0-0 상황에서 전반 33분 손흥민이 스콧 맥토미니의 손에 맞고 얼굴을 감싸며 쓰러졌다. 경기는 계속 진행됐고 에딘손 카바니의 골이 터졌다. 하지만 주심은 VAR 판독 결과 맥토미니의 반칙을 불었고 골은 취소됐다.

경기 후 영국프로경기심판기구(PGMOL)은 “맥토미니의 파울은 부적절했고 조심성이 없었다”며 판정에 어떤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맨유 출신 해설가 로이 킨은 “손흥민 정도 되는 선수가 그렇게 오랫동안 그라운드에서 뒹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고 맥토미니의 행동은 반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온라인 상에서도 찬반 여론이 뜨겁게 벌어졌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맨유 감독도 3-1로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내 아들(son)이 상대에게 얼굴 한 대를 맞아 3분간 쓰러져 있고 다른 10명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다면 먹을 것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는 일부 맨유 팬들을 들고 일어서게 하는 계기가 됐을지 모른다.

일부 맨유 팬들은 경기 후 손흥민의 개인 SNS에 악플을 쏟아부었다. 특히 “개고기나 먹어라” “눈이 작은 선수” “북한으로 가버려라” “아시아인들이 코로나를 전파하고 있다” 등 인종차별성 발언이 대다수였다. 당시 손흥민은 EPL 선수들을 향한 인종차별에 맞서는 의미로 일주일간 SNS 활동 중단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팬들과 손흥민의 행동이 극과 극을 이룬 것이다. 팬들이 경기 후 특정 선수들에게 악플을 남기는 건 일반적인 일이지만 인종차별성 발언까지 하는 건 문제가 된다.  

토트넘은 공식 SNS를 통해 “우리 선수 중 한 명이 혐오스러운 인종차별을 겪었다. 구단은 EPL 사무국과 함께 조사를 거쳐 가장 효과적인 조처를 할 것이다. 손흥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조제 무리뉴 감독도 “손흥민에게 솔샤르보다 나은 아버지가 있어 다행이다. 아버지는 자식이 무슨 일을 하든 먹여 살려야 한다. 자식을 먹이려고 도둑질까지도 해야 한다”고 솔샤르 감독 발언을 비판했다.

최근 SNS에서 선수들을 향한 인종차별이 이어지면서 소셜 미디어 업체에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달 26일 아스날 레전드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는 SNS 업체들이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소셜 미디어를 보이콧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근엔 잉글랜드 2부 챔피언십의 스완지 시티, 스코틀랜드 레인저스 등이 선수의 인종차별 피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일주일간 SNS에서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보이콧을 벌인다고 밝혔다.

인스타그램의 모 회사인 페이스북은 CNN에 “손흥민 선수에 대한 인종차별이 끔찍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BLM 세리머니는 단지 흑인 선수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캠페인이 아니다. 모든 인종, 성별, 국적을 통틀어 모든 차별을 반대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EPL은 BLM 세리머니를 하는 건가. 손흥민 인종차별 사태가 EPL 내 인종차별 현 상황을 그대로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