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우 최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이라는 새 역사를 쓴 윤여정. 그가 오스카를 접수하기까지 지나온 시간들을 타임라인으로 알아본다.

사진=A24

# ‘미나리’, 선댄스영화제 첫 소개 되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전세계를 사로잡으며 한국 작품 최초로 오스카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는 동안 ‘미나리’가 선댄스영화제에 공개됐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윤여정은 할머니 순자 역을 맡아 평범하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보는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미국 관객들은 ‘미나리’가 단지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바라보며 단숨에 영화에 빠져들었다. 선댄스영화제에서 ‘미나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그 결과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며 2021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사진='미나리' 스틸컷

# 윤여정, 비평가협회상 싹쓸이…전설의 시작

‘미나리’는 코로나19 여파에도 꿋꿋이 버텨내며 질긴 생명력을 가진 미나리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그 중심엔 윤여정이 있었다. 윤여정은 지난해 9-10월부터 시작된 오스카 시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무려 30개가 넘는 비평가협회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휩쓸며 단숨에 오스카 컨텐더로 자리잡았다. ‘미나리’에 대한 호평은 윤여정에게도 크게 작용됐다.

사진='미나리' 스틸컷

#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수상 불발…but

하지만 윤여정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비평가협회상에선 윤여정이 독보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메이저 시상식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선 ‘모리타니안’ 조디 포스터가,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선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마리아 바칼로바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오스카가 기존에 열리던 2월이 아닌 4월로 밀리면서 그 사이 새로운 영화들이 개봉해 여우조연상 부문은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였다. 윤여정은 메이저 시상식에서 수상에 실패하며 오스카와 멀어지는 듯 보였으나 기회는 다시 한번 찾아왔다.

사진=BBC One 캡처

# 미국배우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접수하며 ‘오스카 수상 1순위’ 급부상

윤여정은 오스카 바로미터인 미국배우조합상을 계기로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됐다. 지난 10년간 미국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가 오스카 수상에 실패한 경우는 단 한 번뿐이었다. 여기에 골든 글로브를 수상한 조디 포스터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해 윤여정의 수상 가능성은 높아졌다. 결국 윤여정은 미국배우조합상을 거머쥐었고 그 기세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접수했다.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후보에 오른 그는 같이 후보 지명된 마리아 바칼로바, ‘더 파더’ 올리비아 콜맨, ‘힐빌리의 노래’ 글렌 클로즈, ‘맹크’ 아만다 사이프리드 보다 우위를 점하게 됐다. 이 시기에 미국에서 아시아인 인종차별 문제가 터졌고 할리우드에서도 이를 반대하는 캠페인이 펼쳐졌다.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지만 아시아인과 관련된 영화 ‘미나리’ 그리고 ‘노매드랜드’는 더욱 힘을 받게 됐다.

AP=연합뉴스

# 오스카 트로피에 ‘윤여정’ 이름을 새기다

26일 오전 9시(한국시각) 미국 LA 유니온 스테이션,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윤여정의 수상 가능성은 높았다. 뉴욕 타임스, AF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윤여정을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1순위로 꼽았다. 지난해 남우조연상 수상자 브래드 피트가 ‘여정 윤’을 호명했고 윤여정은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놀라워하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동안 윤여정은 코로나19 여파로 화상 연결을 통해 시상식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번엔 오프라인으로 트로피를 받게 됐고 단상에서 자신의 스피치를 전세계에 보여주게 됐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수상 장면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윤여정은 특유의 재치있는 수상 소감으로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을 웃게 만들기도 하고,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한국 배우 최초, 아시아 배우로는 두 번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두 여인’ 소피아 로렌, ‘대부 2’ 로버트 드 니로,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트래픽’ 베네시오 델 토로, ‘라비앙 로즈’ 마리옹 꼬띠아르에 이어 영어가 아닌 대사로 연기상을 받은 6번째 주인공이 됐다. 55년 연기 인생을 살아온 74세 윤여정은 꿈 같은 1년을 보내고 이제 다시 작품을 통해 우리 곁에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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