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유럽은 해가 4시부터 지는게 야경을 빨리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다. 

베네치아에서의 난감했던 경험담을 꺼내본다. 기차로 베네치아에 도착한 건 오전 10시쯤, 숙소 체크인은 2시였다. 관광을 하다가 체크인을 하려고, 기차역 안에 있는 물품 보관함에 짐을 보관한 뒤 수상버스 1일권을 끊었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라는 명성답게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

 

산 마르코 광장으로 들어가는 수상버스를 타고

배가 운항하는 시간이 있어서 빨리 이동하는건 힘들었다. 이동시간도 꽤 걸렸다. 그러나 이동하는 그 시간은 사방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건축 1001번,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

물위에 떠 있는 건물들은 마치 일련의 작품을 보고있는 것 같았다. 배에 내려 광장으로 걸어들어가는 길목엔 비둘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원체 비둘기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비둘기를 피하는 사람들보단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비둘기와 함께 즐거워하는 아저씨

비둘기와 함께 있는 아저씨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영화 ‘나홀로 집에2’에 나온 비둘기 아줌마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도, 뭔가 멋있어 보였다. 한국에선 늘 비둘기를 피하던 나는 이번만큼은 피하지 않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가방에 있던 과자까지 주는 여유를 부려봤다.

 

산 마르코 광장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세상 놀랍고 신기하여, 오랜 배 시간을 기다리며 온 보람이 느껴졌다.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사람들도 많아졌고, 곳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풍경도 많아졌다. 나 역시 기다리기 보다는 주변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사진도 찍고 밥도 먹고, 눈에 보이는 게 있으면 조금이나마 쇼핑도 하고.

체크인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배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발목을 잡는 아쉬움에, 몇번이고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물 위의 산마르코 대성당 / 사진을 찍고나서, 굳이 수평 수직을 맞춰 수정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연신 뒤를 돌아보던 나는 내 눈이 아예 카메라였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기도 했다. 곳곳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있을리 만무했다.

체크인을 한 후, 남은 시간이 아쉬워 다시 배를 타기 위해 나왔다. 알록달록한 건물이 즐비한, 그리고 아이유의 뮤직비디오에 나와 더욱 유명해진 부라노 섬을 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나는 뒤늦게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배를 한번 더 갈아타고 가야할만큼 먼 곳일 뿐만 아니라 배차 시간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배를 갈아타야하는 곳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렸고, 그 결과 도착까지 총 3시간 반이 걸렸다.

 

어두워진 밤의 부라노 섬

어둑어둑해진 밤, 가로등 불빛 사이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부라노 섬의 분위기를 지폈다. 하지만, 이렇게 어두울 수가. 섬은 무척이나 캄캄했다. 부라노섬을 먼저 왔어야 했다는 후회심이 밀려왔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았을 광경이 색다른 경험이라는 건 확실했다. 남들과 달리 칠흙같은 밤에 바라보는 부라노 섬.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을테다.

예측하지 못하는 난관에 마주쳤을 때, 우리의 여행은 색다르고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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