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늦덕의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덕질 일기, 가슴이 오덕오덕

"스스로 우스워지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게 바로 덕후인 것 같아..."

과거의 나는 덕후 친구 A가 하는 말을 종종 흘려듣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깨닫는다. 나는 하루카 피규어를 한번 사본 경험만으로도 저 말을 100%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내가 우주의 진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뼈속까지 실감했다. 한번 정을 줘버리고 나면 눈에 뵈는게 없어지는 막무가내의 감정이 바로 사랑 아니던가. 덕질을 하면서 다시금 생동하는 그 감정은, 정말 애인 따위는 없어도 좋을 것처럼 충만한 행복을 안겼다.

 

그러나 덕후에게 날아오는 시련은 예기치 못한 연속성을 띄고 있었다. 한번 직격탄을 맞고 가까스로 치유하고 있으니 연달아 두번째의 직격탄이 날아왔다. 나는 한화 7만 6000원짜리 피규어의 1차 결제금액으로 11만 7000원을 긁은 충격에 시들시들해져 있었다. 하지만 하루카가 날아올 날만 고대하며 셀프 힐링에 나섰다. 하루카를 놓아둘 자리를 마련하고, 그 자리를 매일같이 쓸고 닦았으며, 그럼에도 들뜨는 감정은 하루카의 짤들을 보며 다스렸다. 일을 하고 있어도 하루카 피규어가 생각났고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아도, 실컷 잠을 자고나서 아침에 눈을 뜰 때에도 생각났다.

언제나, 웃음꽃이 만개하는 나날이었다. 내가 수상쩍게 웃고 있으면 누군가가 기분 좋은 일이 있냐고 물었다. "아니요~"라고 답하면서도 실실 웃는 것을 멈추지 못해 이상한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1차 결제를 하고나서 4일쯤 흘렀을까. 주문한 상품이 현지물류센터에 도착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추가결제금액이 발생했다는 메시지가 날아와 다시금 인성을 아예 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 금액이 100원이든, 1000원이든, 추가 결제까지 해야한다니 정말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불만 서린 표정을 풀지 못한 채 홈페이지에 들어가 추가금액을 확인했다.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조성하는 빨간 글자가 2차 금액을 번뜩이며 결제를 독촉하고 있었다.

 

".......1만 3000원...? ......장난하냐?"

나는 굉장히 성미가 급한 사람이다. 공과금도 청구서가 날아오는 즉시 납부하고, 휴대폰 요금도 명세서 알림을 받아 이체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카드로 결제해버리는 부류다. 그런 내가, 피규어 2차 결제 금액은 무려 두 시간이 흐르고서야 결제할 수 있었다. 1만 3000원의 추가 금액은 두 시간동안 잠시 인성을 잃게 하기 충분했다.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금액일 수도 있겠지만... 상황 자체가 달랐다. 나는 온갖 수수료에 터무니 없이 비싼 일본 현지의 배송비, 대행업체가 임의로 책정한 놀라운 환율에 피눈물을 흘린 멍청이 아니었던가. 

콧김을 뿜으며 정산 상세내역을 살폈다. 원인은 내가 제멋대로 기입한 피규어의 무게에 있었다. "피규어가 무게가 나가면 얼마나 나가겠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0.5kg로 예상비용을 계산했던 것이 잘못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피규어의 실제 무게는 1.25kg이었다. 하늘하늘한 몸체의 피규어가 그정도 무게까지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실로 엄청난 타격을 느꼈다. 그제서야 왜 덕후들이 경매대행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그때서야 알았다. 과정이 어느정도 진척되기 전까지는…아무도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지운송료 또한 총 700엔이었다고 한다. 1차 예상 비용에서 200엔이 뛴 것이다. 여기에 국제 운송료가 1050엔이 뛰었다. 도합 1250엔... 하지만 환율은 당시의 9.6이 아닌 대행업체가 멋대로 정한 10.3을 적용했기에 총 1만 3000원으로 책정됐다. 11만 6000원에서 1만 3000원을 더하면 12만 9000원이다. 7750엔에 피규어를 낙찰한 후 기쁨을 주체 못해 여기저기 카톡 메시지를 날렸던 지난날들이 꿈결같이 느껴졌다.

나는 두시간 동안 분노와 내적 갈등을 겪은 끝에, 결국 2차 결제를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여기서 굴복하지 않는다면 그동안의 노력은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것이기에... 그리고 여기서 미련을 못 놓는다면, 두번 다시 또 다른 사랑스러운 피규어들을 선뜻 가질 용기를 못낼 것 같았기에. 그래서 나는 여자답게, 당당히 결제했다. 미래의 나를 위해, 나의 곁에 날아올 또 다른 2D들을 위해,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고자. 어덕행덕의 길을 걷기 위해!

 

그리하여 나는 물총 하루카를 손에 얻었다. 그 과정에서 대행업체가 발송 정보를 알리지 않고, 운송장번호를 기입하지 않는 등의 일로 신경을 거슬리게 했지만… 뭐, 다시는 이 업체를 사용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ㅡㅡ) 

중요한 것은 하루카가 지금 내 방에서 10대 이케맨 특유의 싱그러움을 내뿜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다행히 그날 이후로 나는 이제 직구의 요정이 됐다. 나름의 요령이 생겨, 피규어를 뻥 튀기 한 가격이 아닌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팁을 스스로 터득했다. 

처음에는 한놈만 제대로 모으자고 결심했지만, 이젠 여러 장르마다 픽해놓은 최애들을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다. 피규어들이 좀비처럼 증식하고 있는 진열대를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허지웅씨, 백도빈씨, 데프콘씨, 그리고 친구 A까지…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수집욕을 불태웠을 것이다.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지만 매우 달콤하고도 중독적인 어덕행덕의 길에 발을 내딛은 이상. 이제 돌아갈 길은 없다☆

일본 옥션 참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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