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 일이 매우 즐거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할 것 같아요.”

해외로 넘나드는 삶, 청춘이 꿈 꾸는 ‘화려한 싱글’을 만났다. 록레코드코리아의 권경미(51) 대표는 중화권 시장에서 한류 콘텐츠의 파워를 전파하는 중이다. 회사에서 배움과 성취를 반복하고, 중화권 인맥을 넓히며 대표직까지 오를 동안 바쁘디 바쁜 나홀로 인생을 고수했다. 그 삶에 아쉬움이라고 없진 않겠으나 매 순간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휴일이 따로 없는 싱글라이프지만 지금껏 너무나도 값진 인생을 살아왔기에 즐거움만이 충만하다.

 

 

성신여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을 당시에만 해도 공산국가인 중국을 가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그 지역 문화에 관심이 많았기에 대만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이후 대만국립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음반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그게 벌써 20여 년 전이다. 현재 대표로 있는 록레코드코리아가 첫 직장이었다.

“대만에 3년 정도 살았어요. 록레코드 본사가 대만에 있었는데, 고 장국영이 연예계를 은퇴했다가 다시 복귀했을 때 계약해서 유명해진 곳이에요. 당시만 해도 저는 신참이었어요. 장국영씨가 방한했을 때 함께 일해보기도 했죠. 굉장히 센스 있고 따뜻한 분이었어요. 그분 덕에 회사가 수익을 많이 올렸고요(웃음).”

방송사에서 음악 일을 하신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전문인 지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직장생활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께서 음악 창작에 악기 연주도 하셨어요. 저는 뮤지션과 거리가 멀었고, 그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는 쪽이었죠. 그래서인지 음반업계에서 근무하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다만 이렇게 오래도록 할 줄은 몰랐죠. 옛날에는 음반사 직원이 마흔을 넘기면 음악 찾아 듣는 게 귀찮아서 일을 못한다는 말이 돌기도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음악 듣는 환경이 좋아져서…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뭐든 들을 수 있는 시대잖아요?”

 

 

시간이라는 자원을 일에 가장 많이 투여하다 보니 이제껏 혼자다. 건강한 방법은 아니지만 퇴근시간을 생각하지 않으며 일에 몰두하는 삶을 살아왔다. 회사의 소스가 풍부하다보니 몸만 성하면 계속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연애도 제쳐두고 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깨닫게 된 점도 있다. 바로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

“사람마다 생각 구조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제가 꽤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느꼈죠. 시간을 분배해서 투자해야 하는데 너무 일에 미련이 많은 거예요. 그러다보니 너무 재미없는 사람같이 느껴지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은 일과 가족을 병행하는데, 저는 그런 기회를 잡지 않았으니까요. 결혼하신 분들에 비하면 여유로운 편이라 약간 죄책감이 들기도 해요. 지금이야 비혼이 트렌드라 하고, 각자의 개성이 중요시되는 시대인데 이런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저는 카리스마 있는 비혼족은 아닌 것 같아요.”

오롯이 혼자 이끌어나가는 삶이기 때문에, 보다 규칙적이고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건 나이가 들어도 살이 쪄 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걷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라 빠져들었다. 여유가 되면 가족들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고 한다. 혼삶으로부터 비롯된 공백을 채워주는 건 결국 가족이다.

“제가 직접 꾸린 가족은 없어도, 저를 존재하게 한 가족들이 있어 다행이에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며 생각해보니 나를 풍부하게 해주고 기댈 수 있게 해주는 건 가족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가족에게 많이 베풀려고 해요.”

 

 

그 안에 모든 세상살이의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혼자 살다보니 휴대폰에 많이 의지하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건 휴대폰으로 들여다보는 세상이 많이 바뀌어있다는 점이다. 1인 라이프와 관련된 단어들이 인터넷에 넘실대는 것만 봐도 비혼주의가 트렌드로 부상한 게 새삼 실감된다.

“확실히 달라진 걸 느껴요. 혼영, 혼밥, 혼술 같은 게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걸 보면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게 정말 많은 것 같더라고요.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할 사람이 꽤 있겠다 싶어요. ‘혼자’는 당연히 고독하다는 게 불변의 법칙이지만,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상대를 만나면 덜 고독한 거지 안 고독한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외로운 건 마찬가지인데,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개인의 선택인 것 같아요.”

비혼으로 살면서 가장 요구되는 건 긍정적인 사고다.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기에 되도록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과거에는 내가 내 인생의 주연이기 보다는 조연같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까, 모두 각자의 스토리를 지닌 인생의 주인공이더라고요. 연예인도 일반인도, 젊을 때는 누구나 자기 인생의 대스타가 되긴 힘들잖아요. 좋은 타이밍과 사람들을 만나면 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맞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 세상에서 어떤 개체인지를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내 기를 누르는 게 아니라, 내 존재 자체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 이 인생이 더없이 소중해요.”

 

 

2018년, 무술년이 밝았다. 또 한 번의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여전히 비혼이고 싶은 마음은 변함 없다. '업계 최고령'이라는 타이틀이 붙더라도,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배움의 끝이 없는 직장생활을 영위하고 싶다.

“올해에도 결혼에 대한 기대나 계획은 없어요. 가장 바라는 건, 지금의 이 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거예요. 피를 나눈 가족들 외에 일로 만나게 된 사람들 역시 제겐 가족 같은 관계거든요.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서로 신뢰하며 함께 일하는 이들과 계속 돈을 벌고 꿈을 이루고 싶어요. 다수의 목표가 같아지기가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같은 목표를 좇아 모인 사람들인 만큼 끝까지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네요.”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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