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틀 속에 구성돼 있다. 그 틀은 참으로 완고해서 조금이라도 모난 곳이 눈에 띄면 정을 들이밀어 깎아내려 혈안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소수자들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으로 규정됐고 혐오의 대상이자, 개도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돌이켜보면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족들도 이 편견어린 시선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무슨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 그리고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편견은 퀴어(Queer)로 지칭되는 성소수자들을 향한 시선에 비하면 가벼워 보인다.

추위가 절정에 이르던 새해의 시작 즈음,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강명진(39)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을 만났다. 스스로 게이라 당당히 밝히는 그에게서 우리 사회 속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의 현실과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성소수자들도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저희는 인식개선의 목적보다도 ‘성소수자들이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려는 목적이 더 커요. 저희의 존재가 인지된 후에야 비로소 함께 논의를 해볼 기회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가시화라고 하지요. 흔히 퀴어가 혐오의 중심에 서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저희의 존재가 조금씩 세상에 드러나면서 생긴 반발과 거부감인 거예요. 아주 먼 옛날 ‘인종차별’ 문제도 그랬고요, 또 ‘여성인권’ 문제도 같은 반발과정을 거쳤어요. 하지만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기회를 함께 제공하는 겁니다.”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 1회 행사를 시작으로 지난해 18회 행사를 성료했다. 올해도 일찌감치 기획 단계에 들어갔다. 강 위원장은 기획되고 있는 축제까지 포함하면 9회째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오면서 많은 이들의 지지와 성원을 얻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 편견어린 시선도 여전하다.

“아직 시선이 변화하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퀴어문화축제는 비단 퀴어들만 즐기는 축제는 아니에요.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참여하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어요. 누군가에겐 콘텐츠 즐김의 장이기도, 고민의 장이기도, 의견 교류의 장, 그리고 사회운동의 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사회에 불편함을 끼쳐서 가시화 시켜야 해요.

거의 20년 째 축제가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 성취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초심에 맞게 계속 이뤄지고 있는 게 특히 그렇죠. 사실 저희가 직접 국회를 점령하거나 법안을 발의하지는 못하잖아요.(웃음) 하지만 이 장을 열어서 꾸준히 담론을 제기하고, 더욱 더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는 건 아주 큰 성취라고 생각해요. 그 덕에 참여자도 꾸준히 늘고 있고요, 저희와 함께 연대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늘었어요.”

 

아직 대한민국 사회는 ‘혈연 중심’의 가족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고 오순도순 살아야 비로소 진정한 가족을 구성하게 된다는 의미다. 물론 최근 1인가구, 비혼족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지만, 이 삐딱한 인식 한복판에 서있는 강 위원장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보였다.

“요즘에 각박한 삶이 이어지다 보니까 특히 ‘반드시 무언갈 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몇 살 땐 학교를 가고, 몇 살까진 취직을 하고, 또 몇 살까진 결혼도 해야하고 그런 것들이요. 마치 의식 속에 정해진 규칙처럼 돌아가려 해요. 그 중에서도 결혼은 유독 더 짐으로 다가오죠. 예전처럼 때돼서 마음 맞는다고 할 수 없잖아요. 이 모든 문제가 사회라는 틀 속에 우리가 가둬지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온전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규정한 삶을 살아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거지요.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강 위원장은 게이다. 하지만 비단 그 단어 하나에만 구속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의 애인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아들이자, 친구, 삼촌 등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는 그를 게이로만 부르고 짐작해서 판단한다. 그는 “게이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만 나를 규정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 단어로 명확히 규정될 수 없어요. 각자 상황과 특질, 경험에 의해 개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니까 결국 누구나 소수자인 것이에요. 다른 소수자들의, 개개의 특성을 존중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공감능력이 떨어지면 나도 모르는 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많은 분들께 퀴어문화축제에 와보시라고 말씀을 드려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자신의 관념 속에 자리한 틀을 깨보시라는 의미에서요. 너무 홍보 같았나요?(웃음)”

 

강명진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인식변화를 위해 힘쓰고 있지만 이제 올해, 한국나이로 불혹이 됐다. “조금씩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는 솔직한 말도 전했다. 그는 자신의 싱글라이프를 위해 꼭 지키고자 하는 몇 가지를 소개했다.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으려고 해요. 물론 누군가에게 화를 내며 푼다는 의미는 아니에요.(웃음) 혼자 있을 때 되새기면서 해소하는 것이지요. 사실 저는 남들에 비해 결혼과 육아에서 자유로운 몸이잖아요. 그 여유를 오롯이 제게 쓸 수 있다는 거지요. 예전에는 여행도 못가고 일을 위해 뛰기만 했는데, 작년 말부터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 하고 있어요.

근데 솔직히 제가 언제까지 싱글일지는 모르겠어요. 결혼은 굳이 법적기준으로 정해놓은 사람과 사는 삶을 지칭하는 게 아니잖아요. 다만 함께 살아가자고 약속한 사람이 있느냐의 문제인 거 같아요. 만일 그런 사람이 생긴다면,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삶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때가 오겠지요?(웃음)”

강 위원장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개인의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전했다. 그는 마지막 대답에서조차 개인을 가두는 틀에 대한 저항정신을 드러냈다.

“어릴 때 꿈이 한량이었어요. 근데 그게 무척 어렵더라고요. 돈도 많고, 아는 것도 많고, 심지어 잘 놀아야만 한량이 될 수 있다더군요.(웃음) 그래서 그 꿈은 접었어요. 저는 육체나 정신이나 건강하게 살고자 해요. 저도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생각이 고착화 되겠죠. 그 틀을 깨고 싶어요. 그래서 저를 늘 되돌아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면, 일을 내려놓고 훌쩍 떠나보는 것도 방법이 되겠네요.”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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