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하면 아직도 ‘저소득’, ‘취약계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부동산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임대 아파트’와 ‘일반분양 아파트’ 사이에 차별과 갈등이 존재했다는 어떤 지역에 대한 뉴스를 기억한다. 10억원이 넘는 집을 여러 채 보유한 이들이 등장하는 부동산 재테크 비법 열풍의 뒤편에는 사실 어디를 빌려야 조금 더 싸게, 오래 살 수 있나를 고민하는 더 많은 ‘임차인’들이 있다. 

하지만 집 없는 사람들이 사는 ‘임대주택’에도 이렇게 우울한 뉴스만 있지는 않다. 당장 거액의 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별로 없는 청년 1인가구들은 협동조합 을 만들어 공공주택 임대사업을 벌여 유명세를 탔다. 또 1인 가구를 위한 신개념의 ‘공유주택’ 또한 더 스타일리시하고 살기 편리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월세 부담이 완전히 꺾이지는 않으나, 나름의 의미가 있다.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주택정책의 결과물인 국민임대주택이 알찬 주민편의시설로 ‘살고 싶은 집’을 제공하는 모습 또한 눈에 띄며, ‘소규모 공동주택’이라는 인상이 강했던 사회주택 역시 제도적 뒷받침을 바탕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민달팽이’들이 만든 유명한 ‘달팽이집’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라고 압축되는 청년 1인가구의 주거 문제는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열악하다. 이런 상황을 개선해보고자 공공주택임대사업에 뛰어든 청년들의 협동조합이 있다. 집 없이 사는 달팽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민달팽이 유니온(민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민유가 임대하는 주택은 ‘달팽이집’이라고 불린다. SNS에서 새로운 청년 대안주거로 제법 유명세를 탔다. 조합에서 주택을 장기 임대하고, 조합원에게 각 방을 다시 임대하는 형식이다. 월세는 비슷한 크기의 다른 원룸과 비슷하지만, 장기임대이기 때문에 보증금이 다른 주택보다 꽤 낮은 편이며 계약기간 또한 자유롭고 집주인과의 분쟁에 시달릴 일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내부는 거실과 욕실 등이 공동 생활시설로 된 ‘셰어하우스’ 형태이다. 

★사회적 소유 추구하는 ‘함께주택’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함께주택’ 또한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대안주거방식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알려져 있다. 2014년 성산동에 1호가, 2016년 망원동에 2호가 지어졌다. 이곳은 민유와 달리 운영주체인 ‘함께주택협동조합’이 주택을 매입해 조합원에게 임대하는 형태다. 조합원이 내는 월 사용료는 고정돼 있으며 토지매입비, 건축 비용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주택 매입 원리금과 이자가 조합원의 월세를 통해 부담되므로 파격적으로 저렴하지는 않다. 그러나 개인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회적 소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주거 형태이다. 조합원은 주택의 소유주인 ‘조합’의 일원으로 집주인이기도 하고, 월 사용료를 내는 세입자이기도 하다. 조합원들 개인이 집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함께 공유해 살아가는 셰어하우스의 집값을 공평하게 분담해 낸다고 볼 수도 있는 특이한 모델이다. 

 

★서울소셜스탠다드, 1인가구 맞춤형 공유주택

소셜 벤처기업 ‘서울소셜스탠다드’가 만든 ‘공유주택’인 ‘통의동집’, 연남동 ‘어쩌다집’, 신림동 ‘소담소담’ 또한 주목할 만하다. 청년 1인가구의 ‘임시적이고 열악한’ 주거형태에서 벗어나, 고독과 불안을 해소해 주는 공동체로서의 셰어하우스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기획됐다. 건물을 장기 임대한 뒤 세입자에게 이를 재임대하는 방식은 ‘민유’와 유사하다. 

대표 공유주택인 ‘통의동집’의 경우 1층은 입주민을 위한 북카페 겸 열린 공간이며, 지하 1층은 공용 주방 겸 카페다. 카페처럼 세련되게 공간이 연출돼 있으며, 입주 공간에도 수납량을 최대한 늘린 설계로 1인 가구의 취향을 맞췄다. 1인 가구 전용 공간이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관리 규약 또한 제공한다. 

서울소셜스탠다드의 '어쩌다집' 전경.

 

★국민임대주택, 안 살고 싶은 동네? No~

공공기관 또는 민간이 재정 및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아 전용면적 25.7평 이하로 건설하여 5년 이상 임대하는 모든 주택을 공공임대주택이라고 부른다. 이 중 국민임대주택은 저소득층을 우선 배려해 시행하는 장기임대로, 소득 제한이 있다. 국민임대주택을 비롯한 공공임대주택은 이 때문에 지금까지 ‘저소득층 주거지’로 암암리에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아왔다. 또한 입주자들도 집에 대한 소유의식 부족으로 건물 관리에 관심이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경기도 성남 여수지구 임대주택단지는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LH가 공급한 국민임대 등 658가구 규모인 이 단지에는 공동육아나눔터(육아방), 주민카페, 도서관, 무인택배함을 비롯해 타 임대주택단지에선 볼 수 없던 카셰어링 시스템까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저소득층 주거지역’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대규모 편의시설은 오히려 부러움을 자아낸다. 

성남 여수지구 임대주택 단지의 카 셰어링 서비스.

 

★사회주택, 이웃과 문화가 있는 공유공간으로

건설 주체의 열악함으로 항상 소규모에 그쳤던 ‘사회주택’에도 제도적인 뒷받침과 함께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을 담보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사회주택과 공동체주택 건설주체에 사업비의 90%까지를 지원하는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의 혜택을 받은 사회적 기업 3곳(녹색친구들, 아이부키, 안테나)이 손을 잡고 서대문구 연희동에 48세대가 입주할 사회주택 ‘연희자락’을 짓는다. 

이곳에는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및 동네 영화관, 예술가들을 위한 활동무대, 이웃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오픈 키친, 아트숍과 갤러리, 커뮤니티 카페 등 듣기만 해도 솔깃한 부대시설이 들어선다. 

중랑구 신내동에 지어질 ‘육아형 공동체주택’ 역시 같은 혜택을 받는다. 다만 이곳은 육아에 초점을 둔 만큼 1인가구보다는 아이를 둔 부모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을 통해 입주자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두고, 북 카페와 공용물품보관소, 공동 세탁실 등의 커뮤니티 시설이 생긴다. 어린이집에는 이웃 주민도 아이를 보낼 수 있을뿐 아니라, ‘육아형 공동체주택’ 자체를 다양한 지역 행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이곳은 ‘성미산 마을 공동체’에서 시작해 공동체주택 공급 사업을 하게 된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만들기)’가 시공과 운영을 맡는다.

 

사진=민달팽이 유니온, 함께주택협동조합, 서울소셜스탠다드, SBS 방송화면 캡처,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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