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 국방부 조달본부에서 외자조달 업무를 하던 故박대기 구매담당관에 의해 조달본부의 비리가 MBC '2580'과 일간지에 폭로됐다. 2002년 3월, 공군시험평가단 부단장이었던 조주형 대령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인 'F-X사업'의 시험 평가 과정에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고 여론에 제보했다. 2009년 10월, 현역 해군 장교였던 김영수 소령이 MBC 'PD수첩'에 출연해 해군 납품 비리 의혹을 고발했다.

 

 

영화 '1급기밀'은 방산 비리에 얽힌 실제 사건들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이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해 국가라는 거대 조직과 개인의 싸움을 그린다. 이야기는 정의롭고 성실한 박대익 중령(김상경)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 기자 김정숙(김옥빈)에게 박 중령이 찾아간다. 그는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국방부 군수본부 항공부품 구매과 과장으로 부임한 박대익에게 어느 날 공군 전투기 파일럿 강영우 대위가 찾아와 전투기 부품 공급 업체 선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대익이 부품구매 서류를 확인하던 중 유독 미국의 에어스타 부품만이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던 와중 내부고발을 한 강영우 대위가 전투기 추락 사고를 당한다. 그러나 군 상부는 이를 조종사 과실로 만들어 사건을 은폐하고, 대익은 충격을 받아 은밀한 뒷조사를 시작한다. 조사 끝에 차세대 전투기 도입과 관련해 미 펜타곤과 국방부 사이에 진행되는 모종의 계약을 접한다. 대익은 정숙, 정인국(신승환)과 함께 군복 뒤에 숨어 국익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방산비리의 만행을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1급기밀'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을 말하겠다는 故홍기선 감독의 신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방산비리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이명박 정부 시절 기획됐다. 이후 8년간 투자를 거부 당하는 등 고초를 겪으며 난산 끝에 태어났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 비판적 작품이 그렇듯, '1급기밀' 역시 영화적 기교를 부리기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스스로 복무한다. 그 의지가 매우 뚜렷하기 때문에 서사 구조 역시 단순하고, 때로는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공법으로 전하려는 노력이겠다.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깊이 다루진 않았으나, 폭로를 위해 움직이는 박대익과 김정숙, 정인국의 고뇌도 짚는다. 박대익은 내부고발자가 감내해야 하는 압박을 시시각각 보여준다. '1급기밀'은 박대익이 조직에 애착을 갖는 과정과, 조직이 그를 '식구'로 만드는 과정을 상당한 시간을 할애애 그린다. 그러나 그에 비해 대익이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배신하게 되는 과정은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못해 아쉽다.

 

 

김정숙과 정인국은 사회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이지만 모든 면이 정의롭지는 않은 개성을 보인다. 세 사람은 사건을 파헤치면서 때로 서로를 믿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갈등은 사소하게 지나간다.

영화에서는 미처 다 그려지지 못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1급기밀'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마지막 사실을 전한다. 거기에 조금 더 구체적인 사실을 덧붙여 아래 소개한다.

1998년 조달본부의 비리를 폭로했던 故박대기 구매담당관은 제보 후 배신자로 낙인 찍혀 행정과 도서실 사서 업무를 맡게 됐고, 1998년 9월 결국 명예퇴직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환으로 사망했다. 2002년 3월, 'F-X사업' 평가 과정의 부당한 압력을 말한 조주형 대령은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 받았다. 2009년 10월, 해군 납품 비리를 MBC 'PD수첩'에 출연해 말한 김영수 소령은 한직을 전전하다 스스로 전역을 택했다.

세 사람의 삶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1급기밀'이 되어선 안 될, 대한민국 시민들의 역사일 것이다. 러닝타임 100분. 12세 이상 관람가.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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