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김하늘(38)이 잠시 내려놨던 ‘멜로 퀸’ 왕관을 다시 썼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는 교통사고로 10년의 기억을 상실한 석원(정우성) 앞에 나타난 비밀스러운 여인 진영(김하늘)의 이야기다. 석원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면서 진영은 현재의 행복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급격히 흔들린다. 개봉 전날인 6일 오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슴 벅찬 새해를 맞은 그녀를 만났다.

 

 

1. 낯선 시나리오

‘나를 잊지 말아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 기억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복선과 반전으로 흐름을 따라잡는 게 녹록치 않다. “시나리오는 완성된 영화보다 더 어려웠지만 이제껏 보지 못했던 독특한 분위기와 색깔, 캐릭터의 매력이 느껴져서 선택했죠”.

 

2. 다른 연기방식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앞뒤 상황을 염두에 두고, 수위 조절을 하고, 설정 상 모른 척하며 감정을 끌고 가야했기에 어려움을 절감했다. 그럼에도 김하늘은 18년차 베테랑답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진영의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했다.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빠르고 정확하게 미리 정리해 놓는 자신의 연기 방식과 달랐던 작업을 오히려 재미나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여성감독 이윤정과의 호흡, 캐릭터에 대한 애정 덕분이었다.

 

3. 사랑의 가치

연기의 중심에 ‘석원을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뒀다. “둘이 지닌 아픔의 크기를 비교할 순 없으나 난 기억을 하는 사람이니까...기억하는 사람이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사랑이 주는 기대와 믿음을 강하게 생각해서 연기할 수 있었지 싶어요. 희망이 없었다면 진영은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저라도 마찬가지였을 테죠”.

 

 

4. 멜로의 매력

데뷔 이후 로맨틱 코미디, 멜로에 최적화된 여배우로 여겨져 왔다. “멜로는 배우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줘요. 감정이 너무 깊어서 바닥까지 쳐야할 뿐만 아니라 몰입이 잘 이뤄져야 하므로 연기하기가 힘들어요. 소진돼 버리고요. 그런데 내 안의 극단의 감정을 연기로 표출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매력적이에요. 직업이 배우라서 그런가 봐요. 한편으론 멜로가 많아져야 여배우들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요”.

 

5. 정우성

주연배우이자 제작자로 참여한 정우성과 첫 공연이라 눈길을 끌었다. “저도 의외예요. 우성 선배님 캐릭터가 되게 흥미로워요. 진지할 땐 매우 진지하고, 분위기 띄우려고 하는데 끊임없이 재미없어요. 본인은 ‘2016년에 드디어 터졌다’고 자부하시죠.(웃음) 이번에 호흡을 맞추면서 선배님에 대해 많은 걸 느끼게 됐음. 감독을 하시더라도 배우들의 마음을 잘 알아줄 것 같아 든든해요”.

 

 

6. 여배우 그리고 윤여정

‘나를 잊지 말아요’ 뒤풀이에 정우성이 출연 중인 영화 ‘아수라’ 멤버들이 대거 참석했다. 무척이나 부러웠다. “남자배우들만의 힘이 있듯이 여배우들의 힘이 있을 텐데...아쉬웠죠. 여배우들과 같이 경쟁하면서 그 안에서 믿고 의지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거든요. 세대별 여배우들이 출연하는 시나리오가 나오면 재밌을 것 같아요. 전 윤여정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꼭 작품으로 만나 뵙고 싶어요”.

 

7. 뮤지션 남동생

김하늘의 남동생 김우주는 음악감독 모그를 도와 ‘나를 잊지 말아요’ 영화음악에 참여했다. “뮤지션인 동생이 영화음악에 매우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에 우리 영화에까지 참여하게 돼서 너무 기뻐요. 잘 된 것 같아 기특하고요”.

 

8. 18년

데뷔 18년을 맞았다. 긴 세월 동안 슬럼프나 기복 없이 활동했다. “스스로 기특하게 여겨져요. 만약 일이라 생각했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내 연기를 사랑하게 되니까 많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건 관객, 관계자들에게 신뢰를 얻었다는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잘하고 있구나 싶죠. 내가 고를 수 있고, 나를 선택해주는 작품이 있다는 거에 감사한 마음이에요”.

 

 

9. 동감

여전히 많은 이들은 멜로영화 ‘동감’(2000)의 여대생 소은을 기억한다. 과거를 끄집어내자 눈가에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너무 예쁘고 풋풋한 인물이었죠. 그간 해왔던 캐릭터들을 모두 애정해서 다 소중해요. 앞으로도 기대가 많이 돼요. 어느 때에 만나느냐에 따라서 표현할 수 있는 게 다르니까요. 연기 결이 다를 거고요.”

 

10. 싱글 탈출

김하늘은 오는 3월19일 한 살 연하의 사업가와 화촉을 밝히며 싱글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꿈꿔왔으니까 소원을 이룬 거죠. 반려자가 생겼다는 점이 저를 편안하게 만들어줘요. 여자로서 매우 중요하고 행복한 순간이죠. 예전이라면 작품 선택 폭이 좁아질 걱정을 했을 텐데 요즘은 다른 여배우들이 결혼 이후에도 멋있게 활동하고 있어서 용기와 자극이 생기라고요. 삶의 크고 작은 자극들이 아티스트에게 큰 영향을 주잖아요. 결혼 이후 좀 더 깊은 감정을 내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사진 김민주(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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