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을 발판으로 삼았던 루키 임정모(26)의 새해 도약이 높기만 하다. 개막 23주년을 맞은 창작뮤지컬 ‘명성황후’(3월6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조선무관 홍계훈 역으로 데뷔 후 첫 메인 배역을 꿰찼다.

 

 

‘레미제라블’ 자베르 경감 커버로 데뷔한 임정모는 ‘스위니토드’ ‘몬테크리스토’ ‘레베카’의 앙상블과 커버(특정 역할을 맡은 배우가 불가피하게 공연에 참여할 수 없을 때 대신 무대에 서는 것)로 활동했다. 그랬기에 ‘명성황후’는 각별한 작품일 수밖에 없다.

“남성적인 면을 많이 보여야 해서 최대한 피지컬을 어필하려고요. 저만의 홍계훈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호위무사 느낌이 확실히 드러나면서도 그 안에 명성황후에 대한 사랑도 있고, 조국을 지키려는 굳건함도 불어넣어야죠. 그러다보면 캐릭터가 더 다채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서울 공연 후반부터 회차가 보장된 얼터로 무대에 서고, 지방공연 때는 트리플(오종혁 최우혁 임정모) 캐스팅으로 참여할 예정이에요.”

감사함이 얼굴에 가득 차오른다. 해외 라이선스 공연만 해오다 처음 하게 된 한국 작품일 뿐만 아니라 23년 역사를 이어온 창작뮤지컬이다. 더욱이 솔로, 이중창 넘버를 부를 수 있는 배역을 맡았으니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는 말을 반복한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고 연기, 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이 되라며 학업에 충실하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고2 무렵, 연기학원에 다니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부여에는 연기학원이 없어서 서울을 오가야 했는데 다행히 부모님이 허락해주셨다. 1년 동안 버스틀 타고 연기학원 주말반을 다녔다. 그러면서 뮤지컬배우에 대한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뮤지컬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 13군데에 원서를 넣었다가 지방대에 입학했고, 단국대 뮤지컬과에 편입했다. 한 학기를 마친 뒤 군 홍보단에 합격해 군복무를 했다.

전역하자마자 ‘레미제라블’의 김우형 김준현이 맡은 자베르 경감 커버 오디션에 도전했다. 배역을 너무 맡고 싶은 마음에 수염을 그린 채 오디션에 나섰고 운 좋게 합격,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스위니토드’에선 조승우 양준모가 연기한 스위니 토드 역 커버에 합격했다. 너무 어린 나이라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오디션에 일부러 늙어 보이도록 얼굴을 연출한 뒤 참가했다.

“주연배우 커버를 맡게 되면 그들의 동선, 호흡, 가창, 연기, 큐사인을 옆에서 세밀하게 체크하고 연마해야 돼요. 그러다보니 공부하는 게 너무 많죠. 더욱이 제가 처음 본 뮤지컬 영상이 ‘지킬 앤 하이드’였는데 그 주인공인 조승우 선배님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근두근거렸어요. 지내고보니 친근한 형이더라고요.”

무명이었던 그를 대중이 발견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방송된 JTBC ‘팬텀싱어 시즌2’였다. 예선 때부터 186cm의 듬직한 체구와 남성적인 바리톤 음색, 겸손한 태도로 시선을 붙들었다. ‘슈퍼히어로’ ‘캡틴’이란 별명이 따라 붙었다. 민머리 연극배우 이정수, 농부테너 정필립과 이룬 언더독팀 ‘라일락’ 이름으로 부른 3중창 ‘Look inside’, 강형호가 가세해 4중창으로 부른 ‘Prayer in the night’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즌1 때 경희대 문화예술의전당으로 결승전을 보러 갔었어요. 클래시컬한 노래를 즐겨 듣고 화음 맞춰 부르는 걸 좋아해서 흠뻑 매료됐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해 시즌2를 하면 꼭 참가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어요.(웃음) 너무 많은 걸 배웠던 시간이에요. 잠을 제대로 자진 못했지만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곡 분석하고 연습하면서 봄, 여름을 다 쏟아 부었죠.”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지방공연, 개막을 앞둔 ‘레베카’ 앙상블 연습을 병행하던 시기라 새벽 5시가 돼야 ‘팬텀싱어’ 연습이 끝날 정도로 스케줄은 혹독했으나 그 시간이 ‘한 여름 밤의 꿈’처럼 그에게 남아있다.

“우리 3명 마음과 똑같았기에 ‘룩 인사이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위로받은 곡이에요. 그동안 노래 공부는 열심히 해왔지만 성악을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었는데 ‘팬텀싱어’에 참가하면서 성악공부를 시작한 셈이에요. 뮤지컬은 여러 가지 발성을 다 사용해야 하므로 요즘엔 재즈나 팝, 록도 들으려고 노력하고 여러 방면으로 시도해보고 있어요. 듣는 것도 시도니까 여러 외국 배우들 동영상도 찾아보고 그래요.”

임정모에게 롤 모델은 없다. 누군가를 따라하고 싶지 않은 이유 하나와 자신의 것을 끊임없이 찾아가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좋은 게 있으면 여기저기서 배워오는 편인 것 같아요. 처음 본 뮤지컬 영상 ‘지킬앤하이드’에서 조승우 선배님이 말하듯이 노래하는 걸 보고 큰 충격에 빠졌거든요. 거기서 영감을 얻었듯이 ‘팬텀싱어’에선 소리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었고요.”

운이 좋다고 표현해야 하나. 이제까지 대극장 작품만 연이어 해오고 있다. 하지만 중극장, 소극장 작품도 무척이나 해보고 싶다. 무대 크기와 감동은 상관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실하게 노래하고 연기하면 관객에게 전달될 것이란 믿음이 생겨서다.

“연극, 드라마, 영화도 하고 싶어요. 하나로만 길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요. ‘레미제라블’을 통해 팔팔한 20대의 느낌을 전하고도 싶고, ‘지킬 앤 하이드’를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극적으로 표현하고파요. 그래서 요즘은 미친 듯이 공연을 보러 다녀요. 직접 보고 느끼는 것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오늘은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보러 갈 거예요.”

마지막으로 그는 ‘진심’을 되새김질했다. 배우에게 있어 캐릭터 분석은 당연한 거고, 무대 위에서 느끼는 진심을 전하는 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란 말과 함께.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이 루키의 뜨거운 심장으로 인해 한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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